몇일 전에 친구놈을 하나 만났다.
밥 좀 사줘라, 얼굴 좀 보자,
귀찮게 하던 녀석을 오히려 내가 불렀던 날.
언제인가 다투었던 날들은
놈과 나의 대화속에 이미 저물고 있었다.
[걔는 원래 그랬잖아]
[그 놈은 검정고시 본다더라..]
[빨리 먹어, 임마.]
[라면 먹냐? 진짜 먹을 줄 몰르네]
막판에 가서 가위바위보에서 진 나는 퉁명스럽게 돈을 냈지만,
어째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 사뭇 정겹다.
난 왜 그리웠던 것일까.
살아온 역사상 가장 멋지게 얄미롭고 남자인 녀석.
뒤로 갈 줄 모르는 무대포 성미로 화가 붙은 적이 한두번도 아니지만,
'놈'은 정말 친구다.
그러나 나는 그날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핸드폰이 없는 놈을 위해서 가끔 연락하는 말이었는데,
버스를 타려고 갈라서는 마당에 놈이 하는 말이 대강 이렇다.
"통 못 봐서 잘 사나 궁금했는데, 오늘 보니까 살도 찌고 프리한가보네."
"잘 가버려. 돌"
"다음에 노래방이나 가자."
당황스러운 김에 나까지 질렸다.
남자라고 둘러대놓고 나는 내심 놈이 밝히길 기다렸던 것이다.
오며 가며 반가워하던 얼굴들이 불현 듯 스치며
발개진 낯을 돌리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돌아서 버린 것에
아직 세상은 살만한가 보다고 생각해버린,
놈이 처음으로 부럽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