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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두유

cherry     날짜 : 2001년 11월 11일 (일) 9:45:07 오후     조회 : 658      
새벽 4시, 부시시 일어나 옷을 챙겨 입는다.

\"오늘은 눈이 많이 와서 미끄러우니 가지 말아라\"하고 말리는 어머니 말씀에도

아랑곳않고 작은 주전자를 들고 병실을 나선다.

어머니가 위장병으로 입원해 병원에서 간호하며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 일이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오빠는 가계를 꾸리느라 언니들은 살림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내가 엄마 곁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그리 된 것이다.

새벽이면 속이 쓰려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를 위해 나는 통금해제 사이렌이

울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생콩을 갈아 죽을 쑨 '두유'를 사러 나간다.

두유가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5시쯤이면 \"두유 사려~\"하는 두유장수의 외침이 들리지만, 좀더 빨리 따끈한

것을 드시게 하려고 공장으로 직접 사러 나갔다.

외등 하나 켜 있지 않은 길은 어찌나 깜깜하고 무섭던지.

쿵쿵쿵, 누가 따라 오는 것도 같고, 읍사무소 앞을 지날 때는 길게 드리운

전봇대 그림자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무서움을 이기려고 노래를 하며 잰걸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두유 공장에 도착했다.

하얀 김이 가득한 공장에 들어서면 두유집 할머니는, \"아이구, 효녀딸 왔구나.

니 정성으로 엄마가 빨리 일어날 게다\"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묵직해진 주전자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날이 밝아 오고 여기저기에서

새벽을 여는 소리가 들려 덜 무서웠다.

'엄마가 이걸 드시고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하며 달음질치는 발걸음은 또 얼마나 가벼웠는지..

지금도 그대로인 읍사무소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33년 전 그날을 생각한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어른이 된 지금도 하지 못할 것 같은데...


김점순 님/전남 보성군 벌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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