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데체 다른 집 고지서가 와 자꾸 오는기고? 벌써 두번째다.\"
고지서를 확인한 엄마가 \"우리 끼구만\"하시자, 어비지는 답답하다는 듯 소리지르신다.
\"뭐가 우리 끼라. 주택용이가 누구고.\"
아버지는 고지서 위에 사용상 구별을 위해 적어 놓은 '영업용/주택용'을 잘못 보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오랜 공직생활로 너무 융통성이 없었지만, 그 지극한 순수 때문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가족에게 웃음을 안겨 주기도 했다.
평생 일기를 쓰신 아버지는 항상 보란 듯이 일기장을 펴 놓으셨고,
우리는 아버지의 의중을 알아야 한다며 열심히 일기검사를 했다.
어느 날은 아버지의 직장 회지에 작은 언니 글이 실린 것에 대해
\"작은딸이 쓴 글 제목은 '벌어져라 참깨'...\"라고 써놓으셔서 얼마나 웃었던지.
원래 제목은 '열려라 참깨'였다.
또 한번은 고속버스에서 한창 극성을 부리던 시계 사기꾼들에게 속아
가짜 금시계를 5만 원을 주고 사신 적이 있다.
나중에 사기당한 걸 아시고 \"경찰서장까지 한 내가 이렇게 어리석을 줄이야!\"
하며 한 달을 괴로워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작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외국에 있는 우리 부부를 위해 테이프를 하나 남기셨다.
그 테이프에는 아버지가 우리 부부에 관한 노랫말로 개사하여 직접 부른 가요가 담겨 있다.
임종도 지키지 못한 나에게 아버지의 마지막 음성이 담긴 그 테이프는 마치
\"우리 사랑하는 영아! 아빠 없어도 슬퍼하지 말고 용기를 가져야 해\"하는 유언과도 같다.
아직도 아버지가 대구 우리집 마루에 앉아서 내가 \"아버지!\"하고 대문을 열면
\"우리 막둥이 왔구나\"하며 함박웃음으로 반기실 것만 같다.
박지영 님/ 이탈리아 로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