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이집트는 무척 더웠다. 각오하고 찾아가긴 했지만,
한낮의 기온이 섭씨 45도를 웃돌다니. 아스완에서는 열풍이 사람을 질식케 하더니
여기 룩소르의 열기는 현기증이 나게 만든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
가끔씩 눈앞에 신기루가 어른거린다. 물이 생명임을 깨닫는다.
한창 더워지기 시작하는 오전 11시. 호텔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콧수염 기른 젊은 운전수가 미소를 지으며 손짓한다.
나일강 서안 지역을 서너 시간 관광하고 싶은데, 거기까지 데려다 주고
기다렸다 다시 호텔까지 오는데 택시 요금이 60파운드(1이집트 파운드는 300원 꼴)란다.
나중에 딴소리 하기 없다. 박시시(팁 혹은 적선)도 없다. 오케이? 오케이. 흥정은 이뤄졌다.
에어컨이 없는 차라 창문을 열어 놓고 달리면서 운전수는 말이 없었다.
숨막히게 뜨거운 열기가 차 안으로 들어오니 달리면서 어려웠을까?
묻는 말 이외에는 과묵하니 조심스레 운전에만 열중했다.
나를 대신해 입장권을 사다 주면서도 시종일관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결혼은 했는지? 그럼요. 애가 둘인 걸요. 아니, 나이가 몇인데? 서른 살이요.
젊어 보이네. 고맙습니다. 부인은? 스물여섯 살요. 아니, 몇 명이냐구.
당연히 한 명이지요. 왜 더 얻지 그래? 휴,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그랬구나. 아무리 이슬람 율법에서 부인을 네 명까지 두는 걸 허용해도
경제적인 문제가 일부다처를 불가능하게 하는구나.
이 차가 자네 건가? 웬 걸요. 그럼 자 추인이 따로 있다는 말인데, 월급은
얼마나? 하루 번 돈 3/4을 차주가 갖고 나머지가 제 몫이지요.
선생님이 오늘 첫 손님이예요. 그렇담 오늘 일당이 15파운드?
아니요. 기름값을 20파운드(3천원)? 그래도 오늘은 손님이라도 태웠으니
운이 좋은 편입니다. 맙소사. 여기 반짝이 스티커하고 막대 사탕이 있는데.
아이들 갖다 주라구.
아이들 선물이라는 말에 운전수의 표정이 더없이 환해졌다.
어디서나 아버지들은 자식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나날의 힘든 삶을 견디며 산다.
나도 아버지인지라 관광을 마치고 선량해 보이는 운전수 손에
10파운드를 따로 쥐어 주며 차가 좋아 너무 뜨거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내일은 에어컨이 있는 차를 구해 올 테니
몇 시에 만날까요? 인샬라(신의 뜻대로)! 기다리지는 말게.
다음날 아침 그는 전날과는 다른 눈부신 새 차를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호텔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만남 (관동대 교수 연호택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