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근무하던 92년 어느 겨울 날이었습니다.
저녁 일곱 시쯤 세 학생이 찾아와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대학입시를 치르기 위해 멀리에서 왔는데 여관에 방이 없어
근처에서 민박을 했다가 연탄가스를 마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병원 입원실은 모두 가득 찼지 뭡니까.
치료는 받았지만 딱하게도 그 학생들은 거리에서 한뎃잠을 잘 판이었습니다.
더구나 내일은 일생일대 중요한 시험날인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우리집에서 묵게 하자 생각하고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께 대충 말씀 드리고 나서 학생들을 집으로 보냈습니다.
마침 그날 저녁 당직근무를 서게 된 저는 집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보니 남학생에겐 따로 방을 내 주었고
여학생은 여동생과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끝에 오늘 아침 미역국을 끓여 밥을 먹여서 보냈다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어머니를 다그쳤습니다.
\"엄마! 시험 보는 학생에게 아침부터 미역국이 웬말입니까?\"
정말 미안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잘 먹고 갔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미안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쯤 그 세 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입시철만 되면 그 학생들이 생각납니다.
혹시 그 미역국 때문에 시험에 미끄러진 것은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다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만약 그때의 학생들이 이 글을 본다면 저희 어머니의 마음은
긴장한 마음을 따뜻한 국물로 녹여 주고 싶어 미역국을 끓였다고 전해 주고 싶습니다.
권오건 님/경북 경주시 황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