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전날의 전쟁에 지친듯 목욕탕은 조용했는데, 잠시뒤 한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고요를 깼다.
"빨리 들어온나. 뭐하노!" 목욕하는 중에도 한 분은 소리 지르다시피 하며 말씀하셨고, 다른 한 분은 초점없는 눈빛으로 앞만 바라 보고 계셨다.
그런데 잠시뒤 멍한 눈빛의 할머니가 탕에 들어가려다 목욕탕바닥에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나? 어디 함 보자. 얼마나 아플꼬" 잔소리만 해 대던 할머니는 멍한 눈빛의 할머니 머리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는 넘어진 할머니의 신세를 한탄하셨다. 그제야 나를 포함한 탕 안에 있던 사람들은 두 분의 사연을 알수 있었다.
두분은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고향 친구였다. 늘그막에 친구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문을 듣고 어렵게 수소문해 겨우 찾았는데, 친구는 홀로 양로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돈 많은 아들과 두 딸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길에 버리고 이민을 가 버린 것이었다.
그 뒤 무려 3년 동안 할머니는 가족과 떨어져 치매에 걸린 친구를 돌보아 오신것이었다.
아무리 오랜 우정이라지만 어떻게 자식조차 버린 치매 노인을 감싸안을수 있단 말인가! 순간 가슴 싸해지는 감동이 밀려왔다.
한 아주머니가 힘들지 않냐고 묻자, 할머니는 "그래도 쟈가 없으면 잠이 안올것 같아예.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할낀데, 내가 먼저 죽으면 안될 낀데" 하며 눈물을 훔치셨다.
사람들이 하나 둘 나가는 동안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다시 목욕탕 가득 울려 퍼졌다.
"똑바로 앉아라. 내가 니땜에 못 산대이" 푸념 아닌 푸념이었지만 그 모습은 너무나 정겨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