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지독한 분이다.
아무리 아파도 아프다고 엄살을 떠시는 양반이 아니다.
그렇다고 몰래 진통제를 드시는 양반도 아니다.
그게 하도 미련해 보이고 속상해서 “엄마는 아파도 싸!” 하고 구박을 하기도 했다.
몇 해 전인가는 장에 종양이 생겨서 그걸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셨는데
맏딸인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아버지만 동행하셨다.
퇴원할 무렵,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걱정 마라. 다 잘 끝났다. 니 걱정한다고 느거 엄마가 절대로 알리지 마라 해서 입 다물고 있었다.
느거 엄마 인내심 하나는 알아 줘야 할 거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 아픈 걸 다 참더라. 참말로 독한 사람이다.”
아버지 말로는 위나 장의 내시경 검사 등 모든 괴로운 검사와
수술 뒤의 통증을 눈을 감고 그대로 견디시더라는 얘기였다.
주변의 다른 환자들이 배를 싸 쥐고 구르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속에서
눈 질끈 감고 입을 꼭 다문 어머니의 모습은 ‘도 닦는 모습’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도 징후가 의심스럽고 진단 결과가 불분명해 무슨 암인 줄 알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때도 의외로 무척 평안한 모습이었다.
노인네가 무슨 마조키스트도 아니고, 아니면 정말 득도를 한 것일까?
며칠 전에 오랜만에 위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고 하시기에 요즘은
수면중에 하는 내시경 검사가 고통이 덜하니 좀 비싸더라도 그걸 하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내사 세상에 아픈 게 하나도 없다. 눈 꼭 감고 먼저 간 그 아 생각하면
정말로 세상에 무섭고 아픈 게 없다, 아나?” 하시는 거였다.
나는 가슴이 찌르르 저려 왔다.
‘그 아’는 당신의 몸을 찢고 나와 17년 동안 세상의 빛을 보다 사라진 어머니의 둘째딸이다.
우리는 그 애가 병마의 고통과 싸우며 얼마나 의연했던가를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그 기억, 죽은 자식에 대한 무의식적인 죄의식을 늘 가슴에 간직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독한 아픔들이 세상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비장의 진통제를 만든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나 또한 그 진통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통을 겪을 때 나도 죽어 가는 동생의 고통을 생각하며 나의 고통을 달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그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통은 새로운 고통을 이기게 해 주는 강력한 진통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