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실 앞 담장에 무언가가 쓰여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깨끗한 담장이었는데 웬 낙서일까?
분명 1학년 아이들이거나 그 바로 윗학년 아이들이 해 놓았을 낙서.
초등학교 아이들의 낙서는 소극적 단계와 적극적 단계로 나뉜다.
소극적 단계는 주로 단어나 사람 이름으로 표현된다.
소극적 단계는 또 단수형과 복수형으로 나뉘는데 자기 이름 하나만을 쓰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 이름 하나만을 쓰는 것이 단수형이고, 자기 이름이나
다른 아이 이름 옆에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 이름을 나란히 쓰는 것이 복수형이다.
복수형 가운데에도 자기 이름과 좋아하는 아이 이름을 쓰는 것은 자기 고백에 목적이 있고,
다른 아이 이름 옆에 좋아하는 아이 이름을 쓰는 것은 선망과 흠모에 목적이 있다.
그 다음 적극적인 단계는 문장으로 표현된다.
자연히 감정 표현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누구하고 누구하고 좋아한다더라, 사랑한다더라, 더 심하게는
무엇무엇을 했다,라고 쓰고 하트 모양의 장식이나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그 다음 문장 표현으로는 욕설이다. 누구누구는 바보, 병신….
그러나 그날 내가 유치원 교실 옆 담장에서 만난 낙서는 그런 종류의 낙서가 결코 아니었다.
그건 이제 막 글자를 깨쳐 가는 아이들이 제가 아는 글자를 자랑하고 싶어서
분필 도막을 훔쳐 내 누가 볼까 봐 조마조마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숨어서 쓴 낙서였다.
‘개굴개굴, 토끼집, 도레미.’
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낙서인가.
못된 욕설이 아니어서 그것은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나의 입가에는 또다시 희미한 웃음이 피어 오른다.
《시골사람, 시골선생님》, 나태주, 동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