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광아, 누가 찾아왔어. 너희 할아버지인 것 같아."
나는 친구들의 말에 의아해하며 밖으로 나갔다.
시멘트 가루와 땀으로 범벅이된 낡은 회색 바지를 입은 늙수그레한 분, 막노동꾼인 내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친구들이 할아버지로 보는것은 당연했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온 싸구려 바지에 허름한 점퍼를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아버지는
그날도 학교 공사일 때문에 오셨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기쁜 나머지 삽 든 손을 흔들고 계셨던 것이다.
"나 모르는 사람이야."
당시 학교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던 나는 친구들에게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싫어서
아버지를 뒤로 한 채 교실로 들어와 버렸다.
세월이 흘러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중대장님으로부터 급한 호출을 받았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것이다.
그 길로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버지의 몸은 이미 싸늘해진 뒤였다.
아버지는 너무 닳아 반들반들해진 회색 바지와 흙 뭍은 낡은 신발, 그 차림 그대로 누워 계셨다.
아버지는 그날도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다가 변을 당하신 것이다.
젊은 사람도 힘겨워 하는 막노동을 35년 동안이나 하면서, 자식만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지.
아버지의 마음을 돌아가신 이제서야 뼈저리게 느끼다니….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창피해 피해 다녔던 학창시절의 일을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힘든 노동으로 못이 박힌 차디찬 아버지의 손을 꽉 잡고 몇 백 번 이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얼른 일어나서 제 용서를 받아 주세요!"
손재광 님 / 경남 통영시 인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