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봄, 너무나 놀란 나머지 지금도 또렷이 떠오르는 일이 있다.
그날 엄마와 언니, 나는 외할머니댁에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운 좋게도 역 안에 들어서자마자 전동차가 곧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폴짝 뛰어 전동차에 올랐다. 그때였다.
잠시 몸이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나도 모르게 발을 헛디뎌 전동차 틈사이로 몸이 쑥 빠지고 말았다.
'쉭쉭' 소리를 내는 괴물 같은 바퀴들, 뚝뚝 떨어지는 기름과
처음 보는 이상한 기계들 사이에서 나는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금방이라도 전동차가 바로 출발할 것만 같아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누군가 머리 위에서 날 불렀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빠진 길고 얇은 틈 사이로 빛을 가리며 엄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엄마는 내 쪽으로 팔을 힘껏 뻗으며 전혀 당황해 하는 기색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혜경아, 엄마 손 잡아. 어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엄마 손을 잡으려 했지만 키가 작아 손이 닿지 않았다.
전동차가 곧 출발할 것만 같아 자꾸 초조해지는데 귓가에서 "사람이 빠졌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여전히 웃어 보이며 "자. 괜찮아. 얼른 엄마 손 잡아" 하셨다.
그 말에 나는 한 번 더 힘을 내어 힘껏 뛰어올랐다.
다행히 엄마의 손가락 제일 마지막 마디가 잡혔다.
나는 필사적으로 매달려 간신히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때 전동차가 출발하지 못하게 기관사 아저씨께 갔다 오던 언니가 달려왔다.
엄마는 그제서야 나를 안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셨다.
전동차가 출발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인데도 엄마는 침착하게 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나를 꺼낼 생각을 하셨던 것이다.
신혜경 님 / 서울 강북구 미아4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