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광장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여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은 몹시 슬프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단두대가 설치된 광장 한가운데
가녀린 몸으로 서있는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빠져나올 수 없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금 단두대에서 처형당할 순간이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어느 한 곳을 힘없이 응시하고 있던 소녀가
마침내 결심한 듯 입술을 한번 굳게 깨물었다.
드디어 소녀가 단두대에 올랐다.
소녀의 슬픈 죽음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녀의 짧은 비명을 듣고 그들은 두눈을 감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조금씩 커져갔다.
그 속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비통한 마음으로 소녀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소녀의 아버지였다.
자신의 눈 앞에서 억울하게 처형당하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소녀의 아버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였다.
그때 마을 사람들과 함께 광장에 모여 있던 한 화가가 붓을 들었다.
화가는 소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비통한 표정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그림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그림을 본 사람들은 누구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그림 가운데 많은 사람들 중 유독 한 사람의 얼굴만이 옷소매로 가려져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마을 사람이 화가에게 물었다.
"왜, 이 사람의 얼굴을 옷소매로 가려져 있습니까?"
그러자 화가가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들의 슬픔은 하루가 지나면 곧 잊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릴 수 있었죠.
하지만 소녀의 아버지의 얼굴은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감히 그릴 수 없는
깊은 영혼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슬픔이었기에 도저히 그릴 수 없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