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남대문 시장 가게' 라는 주소가 적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꺼내 읽어 보니 뜻밖에도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는 이름, '선이' 가 보낸 것이었다.
"언니… 미안하고 고마워요. 아마, 언니는 잘 기억 못할 거예요.
2년 전 제가 한창 진탕 길에서 헤맬 때, 지하철에서 그만 언니의 호주머니에 손을 댔지요.
마침 옆에 있던 아저씨가 발견해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호통을 쳤어요.
그러나 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이끌고 다음 역에서 내리더니
꾸지람 대신 조용히 '무엇 때문에' 부터 물으셨어요…."
2년 전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선이는 네 살에 어머니를 잃고, 소경 아버지와 갖은 고생을 해 가며,
일곱 살부터 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열여섯 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선이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눈물로 나날을 보내다 결국 내 주머니에 손을 댄 것이다.
나 역시 선이와 비슷한 처지에서 자랐던지라 선이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날 나는 선이에게 밥을 먹인 뒤 주머니를 다 털어 15만 원을 주었다.
그리고 남대문에서 일하는 동창을 찾아가 선이를 부탁한 뒤,
소매치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해 놓고 돌아왔다.
그 뒤 우리집이 이사를 가게 되어 그만 연락이 끊기고 만 것이다.
"…얼마 뒤 저는 제 손으로 번 돈을 들고 언니를 찾아갔어요.
그러나 며칠 전 이사갔다는 말에 얼마나 서운했는지 몰라요.
제 인생의 첫 노동 과실을 언니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날 밤 저는 언니에 대한 고마움과 노동의 열매를 남에게 보일 곳이 없어 울고 또 울었지요.
저는 꼭 언니를 찾아내 그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리라 결심했어요."
순간 뜨거운 전류가 흐르면서 '인간의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김미숙 님 / 서울 도봉구 창4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