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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마을 가득 흰 빨래가 휘날리는 정아네 집

     날짜 : 2002년 07월 21일 (일) 4:06:17 오전     조회 : 814      
“짝은엄마 무서워. 왜 사람들이 많아. 우리 딥(집)에 가자.”

정아는 자기 결혼식인지도 모른 채 신부 대기실에서 벌벌 떨며,
화사한 웨딩드레스와 짙은 화장이 불편한 듯 연신 얼굴을 씰룩이면서 투덜거렸다.
예쁘게 치장한 귀걸이며 목걸이는 거추장스럽다고 벌써 다 떼어 버린 터라,
드레스마저 벗겠다고 떼를 쓸까 봐 불안해하며 난 정아 곁에 꼭 붙어 있었다.

정아, 그 애는 내 조카다.
정아가 서너 살 무렵에 정아와 난 조카와 작은엄마로 인연을 맺었다.
정아엄마인 내 형님은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둘째 정아를 낳은 뒤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정아 밑으로
아이 하나를 더 낳자 그 증세가 더 심해지더니 결국 집을 나가고 말았다.

엄마의 정이 부족했던 정아는 어쩌다 나를 만나면 내 주위를 맴돌며 따랐는데,
난 정아를 별로 다정하고 곰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나 역시 잦은 병치레로 힘겨웠던 터라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은 미처 헤아릴 줄 몰랐다.

형님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아주버님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형님을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셨고, 그렇게 형님을 기다리며 혼자서 아이 셋을 키우셨다.

아주버님이 직장생활과 집안 살림에 힘겨워하실 때 우리는
밑반찬 몇 가지와 돈 몇 푼으로 혈육의 정을 메꾸고 생색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힘겨워하는 아주버님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시골 어머님께서 정아를 맡아 주셨다.
그런데 정아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일어나 빨래를 빨아 너는가 하면,
낮이고 밤이고 빨래한다며 멀쩡한 옷들을 물에 담가 버렸다.
또 억지로 학교를 보내면 동네 어귀 냇가에 종일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다 얼마 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정아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였다.
결국 정아를 정신병원에 보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조금만 따뜻이 대해 주었더라면 그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으리라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난 아직 정신병원에 보낼 정도는 아닌 듯싶으니 통원치료를 받게 하자고 고집을 부렸고,
학교는 중단했지만 다행히 병원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정아는 병원 약을 먹고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자는 게 하루 일이 되어 버렸다.
가끔 내게 전화를 해 어눌한 목소리로 “짝은엄마 보고 싶어” 하며울먹였다.
그런 전화를 받는 날이면 종일 정아 생각에 울다가 웃다가 그랬다.
그때마다 ‘정아를 내 호적에 올려야지. 돌아가신 어머님 유언이기도 하고…’ 마음먹었지만
호적에 올리는 일은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아 자꾸만 미루어졌다.

아내에 이어 딸까지 그 지경이 되자 아주버님은 신세를 한탄하며 술이 늘었고,
결국 간경화로 건강이 악화되어 정아가 열일곱 살 무렵 그만 이승 끈을 놓아 버리셨다.
뒤에 남을 어린 자식들이 걸렸는지 눈도 감지 못하셨다.
정아는 병원 영안실 한쪽에서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는 눈물도 없이
손가락으로 방바닥만 푹푹 찌르며 앉아 있었다.
고개 숙인 정아의 목덜미가 진한 슬픔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때 난 꼭 슬픔이 눈물만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곡을 해야 한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막내조카와 정아는 씨익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하얀 소복만큼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 정아를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아주버님을 산에 묻고, 정아는 병원 약을 끊고 오빠와 동생 밥을 해 주며 셋이서 살았다.
그 무렵 정아의 병은 좀처럼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하는 것뿐 다른 문제는 없는 듯 보였고,
우리는 정아에게 짝을 찾아 주기로 했다.
온전치 못한 정아의 짝을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정아에게 딱 맞는 신랑감을 소개받았다.
농촌 총각인데 어릴 때 약을 잘못 먹어 말을 잘 못했다.
말은 못하지만 성실하고 믿음직해 보이는 총각이 정아도 마음에 드는 듯했고,
그 총각 역시 정아를 바라보는 눈빛이진지했으며 사랑이 담뿍 담겨 있었다.

정아는 그렇게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조카사위는 정아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으나 그래도 내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난가을 어느 날 정아가 불쑥 전화를 했다.
“짝은엄마 집에 한번 와 봐.” 그 말이 전부였다.
주말에 내려가 보니 정아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마당 가득 널린 콩을 타작하고 있었다.
집안도 깔끔했고 마당엔 뽀얀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며 우리를 반겼다.
정아는 우리에게 참깨, 고추, 콩 등 갖은 곡물이 가득한 창고 문을 열어 보이며
“이거 다 우리 거야” 하고 환하게 웃었다.
아, 이제는 되었다.
정아는 행복을 아는 평범한 농촌 아낙이 되어 있었다.
누가 그들을 모자라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마음이 불구인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조카와 조카사위는 마음이 건강한 부부였다.
내 조카 정아의 앞날이 건강하고 밝은 희망의 빛으로 가득하길….


김준희 님 / 부산 동래구 사직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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