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 전쟁 당시, 9ㆍ28 수복이 이루어져 전쟁이 끝났는가 싶던 때였다.
페허가 되다시피한 서울 땅에서 청년 최태섭은 친구로부터 단무지를
군대에 납품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청년들을 위해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으로
그는 덜컥 그 일을 해보마고 수락했다.
그러나 그에겐 돈이 없었다.
그래서 전에 거래하던 은행에서 얼마간의 돈을 빌어 조그만 단무지공장을 차렸다.
열심히 단무지를 만들어 팔다 보니 약간의 돈을 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즈음 갑자기 전세가 급변하여 압록강까지 올라간 우리 국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불안해진 사람들이 다시 짐을 싸고 하나 둘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태섭은 짐을 꾸리기 전에 처리할 일이 있었다.
그는 은행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은행은 이미 업무를 중단하고 모두 피난을 떠나고 한 사람만이 남아 뒷일을 수습하고 있었다.
그 역시 매우 초조한 기색으로 떠날 준비를 하느라 최태섭이 다가오는 지도 몰랐다.
최태섭은 큰소리로 말했다.
"빌린 돈을 갚으러 왔소이다."
그제서야 은행직원이 별사람 다보겠다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이 난리통에 돈을 갚으로 왔다구요?
지금 보다시피 은행업무가 마비됐으니 다음에 오시오."
은행직원은 말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나가려고 했다.
최태섭은 얼른 그의 팔을 붙들었다.
"나도 피난을 가려는 중이요. 이 전쟁에 내 목숨도 어찌될 지 모르는데…
그러니 일단 돈부터 받아두십시오."
은행직원은 하는 수 없이 돈을 받고 영수증을 써주었다.
영수증을 호주머니에 넣고 은행문을 나서자 멀리서 쿠르릉 포화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만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최태섭,
그가 바로 한국유리의 기적을 이룬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