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눈이 많던 그해 섣달 그믐밤,
아버지는 밤늦도록 돌아오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쪽문을 열어 두고 뒷마당을 오르락내리락하셨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술렁대는 소리에 깨어 보니 새해 아침이었다.
어물장사를 하던 아버지는 그날 대목을 맞아 밤늦게까지 일하셨는데,
손님이 생선을 사면서 가방을 좌판 위에 놓고 갔단다.
가방에는 논 한 마지기는 족히 살 만큼 큰돈이 들어 있었고,
아버지는 새벽녘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가방 임자를 기다리셨다.
그 손님이 금전적인 보답을 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거절했고,
소주 한 병에 새우깡 한 봉지로 마음을 대신 받아 오셨다.
그 뒤로 아버지는 가끔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아이구! 그때 정말 추워서 혼났어.
어물상자를 전부 태우며 기다렸지” 하셨다.
그러나 정작 견디기 어려웠던 건 돈에 대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양식업을 하다 남해안 일대를 강타한 적조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객지로 나와 어물을 떼다 팔기 시작하셨다.
농번기 때는 날품도 마다 않으신 덕에 내가 중학생 때쯤엔 작으나마 우리집도 마련하셨다.
그때 아버지의 또 다른 소망은 당신의 논밭을 갖는 것이었으니
논 한 마지기 값이 든 가방을 두고 어찌 욕심이 없으셨겠는가.
그런데 이 못난 아들은 허황되이 일확천금을 꿈꾸다 얼마 전 교도소로 들어오고 말았다.
못난 자식을 찾아온 아버지는 철창 저 편에서 내 얼굴만 한참 바라보다가는
끝내 한마디 말씀도 없이 돌아서셨다.
뒤에 아버지가 놓고 간 영치물품을 열어 보니 새우깡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20년 전 그 밤, 끝내 당신의 양심을 지키고 훈장처럼 받았던
새우깡 한 봉지의 긍지를 이 못난 자식이 깨닫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김재두 님 / 경북 청송군 진보우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