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물장수 아주머니가 동네 끝인 우리집에 도착한 것은 해가 떨어지고도 한참 뒤였다.
우리 가족은 식사중이었다.
어머니는 아주머니에게 밥은 좀 자셨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대답 대신 함지박에 든 품목들을 설명하려 들었다.
어머니는 밥 한 그릇을 퍼 왔다.
아주머니는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어머니는 돈이 없어서 살 수가 없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곡식도 받는다고 했다.
“젊은 아줌마, 마음씨가 고와서 아주 싸게 드릴 테니까 한번 골라 보소.
애들도 사탕한티 넋을 빼고 있고….”
어머니는 동동구리무와 양초와 왕사탕 한 꾸러미를 사고,
쌀 두 됫박을 아주머니 쌀자루에 부어 주었다.
이런 당부와 함께.
“우리 신랑한테는 절대로 얘기하시면 안 돼요.”
나는 내 방을 아주머니에게 빼앗겼다.
광산에서 퇴근한 아버지도 못마땅해했다.
허락도 없이 낯선 사람을 들였다고.
어머니는 얇은 벽 너머 아주머니가 들을까 저어하는 듯 소곤거렸다.
“어차피 남의집에서 구걸 잠을 자야 할 텐데,
우리가 재워 드리고 말지 이 밤에 어디로 내보내요. 하룻밤만 봐 줘요.”
왕사탕 몇 개 먹은 대가치고는 참으로 혹독하였다.
내 방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아버지와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한 방에서 자야 했다.
내 방의 아주머니도 우리 식구들만큼이나 밤새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쉼 없이 기침을 해 대었다.
어머니도 잠 못 들고 있었는지 중얼거렸다.
“해소를 앓으시나 보네. 저 몸을 해 가지고는 먹고 살아 보겠다고….”
코를 골던 아버지는 코 고는 소리를 잠깐 멈추고서는, “환장하겠네” 한 뒤에 다시 코를 골았다.
나는 결국 잠이 들기는 했나 보다.
문득문득 깨었는데 그때마다 아주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내가 깨어났을 때 아주머니는 없었다.
아주머니랑 아침밥까지 함께 먹어야 하는가 걱정했는데, 참 다행이었다.
동생들이 빨고 있는 왕사탕을 비롯해서, 어머니가 아주머니에게
쌀 주고 산 것들의 일부를 아버지가 알아보았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어머니를 닦아세웠다. 어머니가 말했다.
“사기는 누가 샀다고 그래요. 방물장수 아줌마가 방값으로 주고 간 거예요.
요새 세상에 누가 돈도 안 받고 밥 주고 재워 주고 그래요.”
“당신은 자주 그러잖아. 당신이 쌀 퍼 준 게 한두 번이야?”
“당신한테 그만큼 혼났는데 내가 또 그러겠어요.”
“그래도 이상해. 방물장수가 그거 조금 팔아 가지구 뭐가 남는다고 이렇게 많이 주고 가?”
“악착같이 받아 냈죠.”
그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 본 어머니의 거짓말이었다.
김종광 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