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됐으니 이제 우리 이별 연습을 하자."
동생이 살고 있는 캐나다로 두 딸을 떠나 보낸 후 연극 배우 이주실 씨는
비로소 참았던 울음을 한꺼번에 터트렸다.
10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두 딸과 단란한 가정을 꾸려오던 그녀가
돌연 암선고를 받은 것은 지난 93년이었다.
"엄마 가슴에 이상한 혹이 만져져요.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등을 밀어주다 엄마의 가슴을 더듬으며 장난을 치던 막내딸 단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가 병원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유방암 3기에
암세포가 임파선으로 전이된 후였다.
그녀는 오른쪽 유방을 절제하고도 엄습해 오는 고통으로 손톱 밑이 시퍼렇게 될 때까지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참아야 했다.
매일 한 움큼씩 빠지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쥐고 울먹이는 두 딸을 끌어안고
서럽게 울기만 하던 그녀는 어느 날, 아이들에게까지 자신의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홀로 무대에 다시 서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오랜 투병생활로 수척해진 몸을 추스리고 귀여운 두 딸의 별명을 딴
'쌍코랑 말코랑 이별연습' 이라는 연극연습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마침내 첫 공연이 서울 혜화동 소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창백한 모습의 이주실 씨는 자신의 내부 깊숙히 담겨있는 감정의 응어리를
거침없이 나타내며 연기에 몰입했다.
비록 그녀의 목소리는 피로로 잔뜩 쉬어 있었고 북받치는 울음으로 목이 메여
노래가 간혹 반주보다 느리긴 했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떠나보내야 돼. 앞으로 괴로움을 겪는 것은 내 몫이야. 딸들은 흰 나비처럼 날려 보내야 해."
그녀의 가족을 상징하는 세 개의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눈물로 얼룩진 그녀가
객석을 향해 팔을 내뻗으면서 연극이 끝나자 감동의 박수 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그녀와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관객들의 훌쩍거림도 오랫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