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어느 날이었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갈 즈음 어디선가 “이동도서 이용하시는 분!”을 외치며
건장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동도서라는 갑작스런 말에 나는 이동도서를 이용하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그때 곁에 있던 언니가 “지희야, 너 이동도서 이용하잖아” 하고 말한 뒤에야
‘참 그렇지’ 하고 생각이 났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이동도서관에서 경품행사를 했는데 내가 경품에 당첨되었으니
조용한 곳으로 가 이야기 좀 나누자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그는 경품에 대해 두 시간 정도 설명하고는 워낙 비싼 것이라
세금으로 47만 원을 내야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솜씨가 어찌나 뛰어난지 귀가 솔깃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동 도서관에 확인하려 했다.
그러자 그는 “세상에는 못된 사람도 많지만 그보다는 착한 사람이 더 많아요”라며
힘주어 말하는 것이었다. 그 한마디에 믿음이 가서 선뜻 47만 원을 내주고 경품을 받았다.
다음날 사람들이 아무래도 속은 것 같다며 자꾸 확인해 보라고 했다.
철썩같이 믿고 있던 나는 아무렴, 하는 마음으로 이동도서관 측에 전화했는데
경품행사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 아직은 착한 사람이 더 많다며 나를 속였다는 배신감에
일주일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너무 억울하고 세상이 어둡게만 보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양산에 사는 친구 아이 돌잔치에 가기 위해 친구와 버스를 탔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려 음료수를 사려고 지갑을 꺼내는데 지갑이 없지 않은가!
난생처음 지갑을 잃어버린 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낯선 아주머니가 지갑을 가지고 있으니 찾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아주머니의 전화에 무척 기쁜 나머지 말씀해 주신 곳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아주머니는 가쁜 숨을 고르는 나를 보시더니, 한참 걱정했을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아무 말 없이 지갑을 돌려주셨다.
잃어버린 지갑을 찾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나는 고맙다며 몇 번을 꾸벅꾸벅 인사를 드렸다.
아주머니와 헤어진 뒤, 지난달 나에게 “아가씨, 세상엔 못된 사람도 많지만
그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아요”라고 했던 남자가 떠올랐다.
그의 말대로 그 남자처럼 세상엔 못된 사람도 많지만 아주머니처럼
착한 사람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머니 덕분에 그에게 입은 마음의 상처도 나을 수 있었고,
세상이 아직은 참 따뜻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주머니,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문지희 님 / 부산시 동구 초량3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