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늘 사방이 막힌 방에서 천장만 쳐다보시다가 이제는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하늘의 별이 되어 아래만 굽어 보실 할머니.
할머니는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한 살 어린 할아버지를 인생의 반려자로 만나셨고,
어렵게 생활하다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마자 중풍에 걸려 여생을 누워 지내셔야 했다.
약이란 약은 다 써 보았지만 쉽게 낫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정성껏 할머니를 돌보셨다.
할머니가 움직일 수 없었기에 할아버지는 식사 하나부터 대소변까지 다 받아 주셨다.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하셨지만 할아버지는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며
할머니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안쓰러워 힘든 줄도 몰랐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눈 감으실 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끌어안고 우셨다.
“어이, 말 좀 해봐. 응?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서 어째, 응?
거기 가서 아흔두 살 먹었다고 해. ‘ 나 아흔두 살이유’라고….
참 힘들게 오래도 살았어. 다음엔 나한테 시집 오지 말어.
고생 안 하는 데로 가. 응?”
눈물을 닦으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도 나는 할머니가 불쌍한 삶을 사셨다고 생각했다.
한평생 고생만 하고 마지막까지 방에 갇혀 누워만 지내시느라 아름다운 것들도
많이 보지 못하셨으니 말이다.
할머니는 얼마나 세상 풍경을 보고 싶으셨을까?
하지만 며칠 뒤 고모 얘기를 듣고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밤,
할아버지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할머니 볼을 부비며 서러운 울음을 삼키셨다.
“어이, 왜 나 안 데려가? 두 시간 뒤에 나 데리고 같이 가자고 부탁했잖어.
어째 마지막 부탁도 안 들어주나. 매정한 사람 같으니. 정말 미안허이.
좋은 것 못해 줘서. 그래도 그거 아나? 내가 당신 참 많이 좋아했는데….
꽃다웠던 얼굴이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로 변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네만
그래도 나한텐 당신뿐이었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할머니 옆에서 누워 잠을 청하던 고모는 그 소리에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하셨고,
나 또한 가슴이 미어졌다. 늘 할머니만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누워만 지내는 답답한 일상에도 할머니가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사신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할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었을지도 모른다.
74년 동안 변함없는 지아비의 사랑을 받고, 마지막까지 그 사랑을 가지고 가셨으니 말이다.
오늘 밤, 하늘을 바라보며 어딘가에서 할아버지를 내려다보고 계실 할머니를 찾아보아야겠다.
이수양 님 / 충남 부여군 태양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