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눈을 갖기를 원한다.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목표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할까 궁리하는 습관이 들었다.
직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소재이다.
학생들에게 두 손을 들고 눈을 감은 뒤 손가락이 양 방향으로 끝없이
뻗어 나가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아이들은 ‘무한’이라는 말뜻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무한을 맛보며,
‘영원’이라는 뜻은 모르지만 상상 속에서 영원이 주는 맛을 느낄 수 있다.
1996년 서울교육대학교 부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던 시절이었다.
4학년 수학에는 ‘큰 수’라는 단원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큰 수를 직접 맛보게 하고 싶었다.
신문이나 책, 잡지 등에서 가장 큰 수로 된 글을 오려 ‘수학판’에 붙이는 과제를 내주었다.
학생들은 수학판에 이미 붙어 있는 큰 수와 자기가 오려온 수를 비교하여
첫째, 둘째, 셋째 큰 수만 남기고 떼어 냈다.
다음으로 가장 큰 수를 적어 오게 했다.
어떤 여학생은 깨알 같은 글씨로 9자만 계속 채워 넣었다.
그것도 부족하여 뒷면까지 9자를 빽빽하게 써 왔다.
“99999999…9999999” 그렇지만 가장 큰 수는 쓸 수 없다.
아이들은 과제를 하면서 가장 큰 수는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정답을 말해 주는 대신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가장 큰 수는 있을까요, 없을까요?”
어떤 아이들은 있다고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없다고도 하였다.
“우리가 살다가 죽으면 끝나 버릴까요, 아니면 무엇이 있을까요?”
아이들은 나의 진지한 질문에 마치 철학자라도 된 것처럼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만화에서 보았거나 이야기를 들었거나 아니면 종교에서 알게 되었건 간에
모든 학생들이 죽음 뒤에 무엇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지금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이라도 무한을 맛본다든지
영원을 상상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하노라”라고 외치는
나의 기대를 우리 아이들은 부응해 준 것 같았다.
‘너희들 알지! 수학은 숫자를 배우고 어려운 문제나 푸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
수학에는 무한이 있고, 무한 그 너머에는 인생과 예술과 철학이 있다는 사실을!’
배종수 님
(서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