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1월, 볼일이 있어 수원에 들른 김종린 씨는 일을 끝내고
역대합실 공중전화 박스에서 수원의 고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서둘러 매표구로 향했다.
"영동이요"
이렇게 말한 뒤 주머니를 뒤적이던 김종린 씨는 주머니 어디에도 지갑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짚이는 것이 있어 다시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가 보았지만 지갑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지갑엔 주민등록증을 비롯하여 친구들의 주소가 적힌 메모, 그리고 얼마의 돈까지 들어 있었다.
혹 주머니에 남은 돈이 있을까 하여 살펴보던 김종린 씨는 갑자기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주머니 속엔 돈이 한 푼도 없었던 것이다.
걸어서 가까스로 고모님댁을 찾은 김종린 씨는 차비를 얻어 그 길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몇 달 후 김종린 씨는 생각지도 않던 잃어버린 그 지갑을 우편으로 돌려 받았다.
지갑은 조금 너저분해 있었지만 주민등록증을 비롯, 여러가지 면허증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으나 김종린 씨가 생각한대로 돈은 들어 있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 다시 6년의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김종린 씨에게 낯모르는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보낸 이가 불분명한 그 편지는 6년 전 김종린 씨의 지갑을 주운 사람이 보낸 것이었다.
편지 내용은 대강 이랬다.
「지갑을 주워 바로 보내려 했으나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지갑 안에 있는 만 원을 써버렸습니다.
다시 돈을 마련해 지갑과 함께 보내려 했으나 그것마저 쉽지 않아
지갑만 먼저 보냈습니다. 그뒤 늘 죄책감에 시달리다 이렇게 편지 드립니다.」
봉투 안에는 빳빳한 만 원 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 돈을 들고 김종린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난 이 돈을 평생 쓰지 않을 테다.
나의 아이들에게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고결한가를 보여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