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밑에서 몇 년을 함께 살며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제자가 있었다.
어느날 제자는 스승의 눈을 피해 도시로 떠나버렸다.
스승 곁에서 배운 것은 고작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하는 일이라
직업을 얻는 데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새삼 밥을 벌어먹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 제자는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스승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제자는 다시 스승의 곁으로 돌아갔다.
늦은 밤, 스승은 언제나 그랬듯 무뚝뚝한 태도로 제자를 방으로 들어오게 했다.
문지방을 넘어가려던 제자는 아무것도 사오지 않은 빈손임을 생각하고
몹시 죄송스러워하며 말을 꺼냈다.
"선생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이렇게 빈손으로 왔습니다. 용서하세요."
그러자 누워있던 스승은 등을 돌려 이불을 들추고 제자의 얼굴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그래, 잘 왔다. 거기다 그냥 내려놓고 들어 오너라."
아무것도 사들고 오지 못해 더욱 마음이 무거웠던 제자는 스승의 말의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비꼬는 건지, 무안을 주는 건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과 두 개라도 사가지고 올 걸.'
제자는 어쩔 줄을 모르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때 다시 스승의 음성이 들려왔다.
"거기다 놓고 이리 오라니까 그러는구나."
더이상은 참지 못한 제자가 볼멘 소리로 눈물까지 흘리면서 말했다.
"정말 야속하십니다. 빈손으로 온 제게 자꾸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이젠 정말로 무정한 스승의 곁을 떠나겠다고 결심한 제자는 재빨리 등을 돌렸다.
"못난 놈!"
나즈막한 스승의 목소리가 제자의 귓청을 때렸다.
'아! 스승님!' 순간 섬광같은 깨달음이 제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제자는 스승의 발 앞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스승은 선물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사오지 못해
죄송해하는 마음을 내려 놓으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