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농장이 또 고립됐습니다."
다급한 무선 연락을 받은 경기도 소방본부 소방항공대 신주희 대장과 이세형 기장은
장대비 속을 뚫고 또다시 헬기를 이륙시킨 후 임진강변의 농장을 찾아 나섰다.
흙탕물을 따라 소와 돼지들이 떠내려 가고 있었다.
멀리 빗속에서 아련히 보이는 농장의 건물 옥상에는
농장 인부와 피서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한 명 가량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곡예비행을 서너차례 시도한 끝에 이들을 겨우 안전한 지역으로 후송시킨 신대장은
마지막으로 남은 환갑이 되어 보이는 한 농민과 입씨름을 하게 되었다.
헬기의 엔진소리와 프로펠러가 돌아가는소리 때문에 두사람은 거의 목청이 터질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할아버지, 빨리 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무슨 소리여, 나는 안갈테니 당신들일랑 빨리 가시오!"
"고집 피우지 마시고 빨리 타십시오. 이러시면 안됩니다."
할아버지는 신대장의 말은 터무니 없는 것이라는 듯,
선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정 그러시다면 농장 건물 3층에서 절대로 나오지 마십시오.
약속하십시오. 절대로 나오면 안됩니다. 아시겠지요?"
하는 수 없이 신대장은 마지막 당부를 하고 뒤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았어. 빨리 가요. 난 괜찮아요."
농토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겠다는 한 농민의 고집을 꺽지 못한 신대장이
혼자 헬기에 오르자 헬기는 바람을 일으키며 힘차게 떠올랐다.
헬기가 떠난 자리에 농부는 홀로 남아 옥상 난간을 붙잡고
마치 기도나 하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오래오래 그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