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에게는 몰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수업 시간에 연습장 가득히 그의 이름을 나열하며 지금쯤 누군가의
피곤한 근육을 풀어 주고 있을 그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는 늘 눈을 지그시 감고 먼 하늘을 주시합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묻곤 하지요.
"수경아, 지금 하늘은 무슨 빛깔이니?"
"네, 아주 파아란 물빛이에요."
나는 잿빛 하늘도, 먹구름이 꽉 끼어 있는 하늘도 늘 파아랗다고 말해요.
그러면 그는 "그건 네 마음이 투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야"라고 말하곤 하지요.
그가 "거짓말하면 못 써. 저게 어떻게 맑은 하늘이니?"라고 대꾸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그리고는 정말 상쾌하게 기지개를 펴고는 심호흡을 한답니다.
내가 아무리 거짓말을 잘해도 그는 나를 꼬옥 믿어 주거든요.
그리고는 내 어깨에 그 두툼하고 큰 손을 턱하니 올려 놓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또 마음이 뭉클해져 둑을 내려온답니다.
대문 앞에 올 때까지 그의 손은 내 어깨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지요.
내 어깨는 언제나 그의 것이었으니까요.
요즘 나의 일기장은 그런 그의 이야기로 가득 넘치는데 내가 없는 사이
그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이랍니다.
그럼 너무 창피하잖아요.
그는 십사 년째 나를 사랑해 주고 있는 사람인데, 나는 겨우 얼마 전부터 그를 좋아하게 됐거든요.
그 이전의 일기장 내용은 온통 그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답니다.
남의 몸을 만져야 하는 안마사라는 직업도 그렇고 언제나 지그시 감은 눈이
나에게는 절망적으로 다가왔지요.
하지만 이제는 늘 남의 피곤한 몸을 풀어 주는 그의 지그시 내려 감은 눈에서 희망을 얻습니다.
아참, 오늘은 그와 함께 바깥 나들이를 가기로 한 날이에요.
빨리 서둘러야겠어요. 벌써 그가 대문 밖에서 재촉을 하고 있거든요.
"네, 아버지 금방 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