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좋아 결혼했건만 신혼 초 기억이라고는 아내와 싸운 기억밖에 없습니다.
워낙 없는 형편에 아이가 커 갈수록 생활비는 늘어가는데, 월급의 반은 늘 부모님과
대학 다니는 남동생 몫이었으니 부담도 되었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해 들어오니 아내가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술도 마신듯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지요. 투정쟁이지만 그래도 착한 아내는 무어라 말할 듯하다가
고개를 떨구고 다시 울더군요.
울음 속에 "애 옷 하나 변변히 못해 주고.." 뭐 이런 말이 중얼중얼 들려 왔습니다.
또 돈 때문이구나 싶어 나는 매정하게 "속상해도 어쩔 수 없다" 하고는 쿨쿨 잠을 자 버렸지요.
이틀 뒤, 남동생이 전화를 해서는 뜬금없이 "형님 고맙습니다" 했습니다.
장학금 신청을 따로 하지 않아 좋은 성적에도 장학금을 놓친 동생은 안절부절못하다가
등록 마감일이 가까워 와 별수 없이 형수에게 전화를 했나 봅니다.
그런데 오늘 통장에 형수가 등록금을 넣어 주어 고맙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이백여 만 원이 작은 돈입니까.
하소연하다 보면 또 남편과 다툴까 싶었던 아내는 혼자 그렇게 엉엉 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 척도 않고 자 버리는 남편이 얼마나 야속했을까요?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그날은 아내에게 연애 시절에도 한 번 못 사 준 장미꽃을 한 바구니나 안겨 주었습니다.
벌써 한참이나 지난 일인데, 아내와 차 한잔 나눌 때면 늘 그때 일을 이야기 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렵지 않게 아내에게 "고맙소"라고 제 마음을 표현합니다.
어려움이란 그때를 잘 이겨 내면 가족을 묶어 주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이 되는 것인가 봅니다.
이우진 님/ 경기도 부천시 역곡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