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고무지우개에 내 이름을 파곤 했다.
자기 도장을 갖는다는 것은 성인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당한 계약의 주체이자 책임과 권리가 스스로에게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도장은 중요한 서류 겉봉에 특별한 기호를 찍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 편지를
몰래 열어 볼 수 없도록 표시한 것에서 유래한다.
기원전 3천 년경 수메르인들은 희귀한 돌에 자기 고유의 형상을 새기고 다니다
거래 내역을 정산할 때 진흙으로 만든 명세서 둘레에 이것을 굴려 내용을 확인했다.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를 둘둘 만 뒤 밀랍으로 겉을 싸 도장으로 이용했고
로마 시대에는 도장 반지가 유행하기도 했다.
19세기에 봉함 편지봉투가 나오기 전까지 서양인들은 편지를 봉할 작은 인장을 늘 지니고 다녔다.
도장은 사용하는 사람이나 용도에 따라 종류가 나뉘었고, 소유한 사람의 신분이나
재산 정도에 따라 재료도 달랐다.
특히 국가나 왕실에서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새' 나 '어보'라 불렀는데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진시황 때 부터다.
진시황이 초나라 화씨가 봉황새가 깃든 돌에서 캐낸 옥을 손에 넣어 도장을 만들었고,
그 뒤 임금이 사용하는 도장을 '옥새'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옥새에는 '수명어천기수영창(受命於天其壽永昌, 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이 영원히 번창하라)' 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의 도장은 단군신화에서 환인이 아들 환웅에게 천하를 다스리고 인간 세상을
구하도록 한다는 표시로 천부인 세 개를 준 것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오늘날의 서명과 같은 '수결(手決)' 즉 글자를 흘려 쓰는 것으로 도장을 대신했다.
대부분 '일심(一心)' 이라는 글자를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로 만들어 썼으며
'변하지 않는 한 마음으로 보증을 다짐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은 '수촌(手寸)' 이라는 서명법을 썼다.
이름을 쓰는 대신 남자는 왼손 중지, 여자는 오른손 중지의 윤곽을 따라 그린,
지장과는 또 다른 독특한 인증 방법이었다.
사대부가 부인들은 도장에 자기 이름 대신 남편에 대한 종속관계를 뜻하는 문구
즉, '통훈대부 영천군수 홍길동 처 이씨' 와 같은 것을 새겨야 했다.
요즘은 위조 기술이 발달해 전문가조차 진짜 도장을 식별하기 어려워 도장 무용론이 일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서명을 사용했듯이 좋은 전통을 되살려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