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전 겨울밤이었습니다.
밤하늘은 잔뜩 어두웠습니다.
두 모녀가 고함지에 흰 연탄재를 가득 채워 머리에 이고 골목길을 내려옵니다.
바람에 살이 에이는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 연탄재를 버리지 않으면 다음에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추위에 아랑곳 않고 종종걸음을 칩니다.
그렇게 15분여를 걸어가 쓰레기장에 연탄재를 버리곤 했습니다.
갓 서른을 넘긴 엄마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의 손에 호호 입김을 불어 녹여 줍니다.
연탄처럼 새까만 겨울 하늘 아래 모녀는 삶의 무게를 그렇게 나누었지요.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말입니다.
까만 반하늘 아래 키다리나무가 흔들립니다.
그 옆 전봇대는 새하얗게 웃고 서 있습니다.
지나가던 자전거도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돌아오는 길은 하나도 춥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우리네 살림살이는 넉넉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연탄 오십 장, 백 장이 집 한켠에 차곡차곡 쌓이면 뱃속 밑바닥부터 따스했지요.
어떤 겨울은 연탄이 바닥나 옆 집, 건넛집으로 꾸러 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때는 부끄러움보다 한 장 잘 꾸면 오늘밤은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연탄 한 장을 빌리면 신이 나서 집으로 달려옵니다.
툇마루에 쪼그리고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던 두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쪼르르 달려나와
까만 연탄을 둘러싸고 싱글거립니다. 그리고는 새 연탄불에 활활 불이 붙어
빨리 밥을 해 먹을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내 손으로 연탄불에 처음 밥을 해 먹은 날은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아홉 살 꼬마가 어른이 된 듯 신이 났고 엄마 없이도 동생들고 밥을 해 먹을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때 연탄은 우리 세 자매에게 아주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이은경 님/ 경남 진주시 상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