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퇴근길이었습니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낯선 아주머니가 골목에 숨어 저를 불렀습니다.
"아가씨, 잠깐 이쪽으로 와 주세요."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만 험한 세상이라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그런데 주위 시선을 살피는 아주머니 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고,
정말 무언가 다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아 쭈뼛쭈뼛 아주머니께로 다가갔습니다.
"고마워요. 내가 오천 원을 줄 테니 저기 보이는 과일 트럭에서 포도 좀 사서 가져가세요."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아주머니가 설명을 덧붙이셨습니다.
"저기서 장사하는 사람이 내 남동생이에요. 얼마 전에 시작했는데, 장사 요령을
잘 몰라서 손님이 없다고 날마다 속상해해요. 내가 팔아 주려고 하면 돈을
안 받을 테고... 제 동생을 도울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어 내 돈으로 사겠다 했더니 "그러면 다음에 팔아 주고,
오늘은 이 돈으로 사세요" 하며 아주머니는 기어코 돈을 쥐어 주셨습니다.
고맙다며 수줍게 웃는 아주머니의 얼굴은 삶에 지친 듯 보였지만, 눈빛은 참 맑았습니다.
과일 트럭에서는 부부가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포도 한 바구니에 얼마냐고 묻자
5천 원이라며 웃는 아저씨의 얼굴이 아까 그 아주머니와 많이 닮았습니다.
포도 한 바구니에 사과를 한 봉지 더 사 들고 돌아서는데, 들릴락 말락 "또 오세요"하고
들려오는 부부의 인사말에 가슴이 아릿했습니다.
집으로 가면서 이 소식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었습니다.
누이 같은 마음으로요.
서울 노원역과 상계역으로 가는 첫번째 네거리 횡단보도 도로변에 가시면
웃음 고운 과일장수 부부가 있답니다.
홍수경님 / 서울 노원구 상계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