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5개월로 접어든 우리 재경이는 잠자는 시간이 짧고 잠투정도 심해서
우리 부부를 여간 애먹이는 게 아니다.
백일 무렵까지 재경이는 밤이면 밤마다 길어야 2시간, 짧으면 50분만에 깨어나
우리 부부의 눈은 늘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밤이 깊을수록 말똥말똥 빛나는 재경이의 눈동자 앞에서 우리는 고문 중에
잠고문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백일이 지나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잠투정이 심한
재경이를 재우는 방법을 우리 부부는 101가지 정도 알고 있다.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동네를 헤매는 초보 부모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웃들이
자신들만의 아기 잠재우는 비법을 알려줬던가.
아기가 놀라지 않게 뒤집어 재우라던 어른들, 아기들은 체온이 높으니까
옷을 얇게 입히라던 할머니, 발이 따뜻해야 잘 잔다고 양말을 신기라던 감자탕집 연변 아줌마,
경비아저씨는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내버려 두라고 다소 냉담한 방법도 제시했고,
친정엄마는 목도 못 가누는 아기를 등에 업어 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조언들 가운데 공통적인 것은 백일만 지나면 괜찮아지니까
백일까지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다.
재경이와 씨름하다 보니 어느새 백일이 지났고 신기하게도 재경이는
한 번 잠들면 아침이 될 때까지 한두 번 정도밖에 깨지 않았다.
아직도 재경이는 다른 아기들에 비해 낮잠 자는 시간도 일정치 않고,
저녁 목욕 후에 한 시간 넘게 잠투정을 하다 잠들지만 우리는 이제 재경이를
재우는 101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재경이의 눈이 스스로 감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 작고 둥근 머리가
잠의 무게를 못 이겨 어깨 위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언제 그렇게 울며 떼를 썼나 모를 정도로 곤하게 잠든 재경이 얼굴을 보며 우리는 깨닫는다.
부모가 된다는 건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거라는 걸.
그 애 스스로 몸을 뒤집고, 엉금엉금 기고, 어느 날 우뚝 서는 걸 기다리는 것뿐.
또한 가까운 어느 날 그 아이의 이유 없는 반항과 밤늦은 귀가가 잦아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까지도.
그리고 36년 전에 내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밤을 새우던, 이제는 흰머리가 성성한
나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내가 그 옛날 왜 그토록 많은 밤 내 부모를 애태우며
기다리게 했을까 뒤늦은 후회도 해보며.
잠든 재경이의 곁에서 우리는 점점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부모가 되어 가고 있다.
성미정 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