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시 한 편
도종환 님 (시인)
월요일 아침이면 나는 시 한 편씩을 나누어준다. 우선 선생님들께 나누어 드리고 선생님들을 통해 교실마다 전달된다.
어떤 반은 그 시를 다시 예쁘게 재편집하여 교실 뒷칠판에 게시하고 시를 읽은 학생들의 느낌과 생각을 적기도 한다. 억지로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가까운 곳에 붙여 두어 틈나는 대로 읽어 보게 하기도 하고 바쁠 때는 그냥 선생님만 읽어 보고 책상에 쌓여 있을 때도 있다. 그 일을 일 년 동안 해 왔다.
이번 주에는 곽재구 시인의 <겨울의 춤>이란 시를 나누어 주었다.
“첫눈이 오기 전에 / 추억의 창문을 손질해야겠다. /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 먼지처럼 훌훌 털어 내고 / 삐걱이는 창틀 가장자리에 / 기다림의 새 못을 쳐야겠다. / 무의미하게 드리워진 / 낡은 커튼을 걷어 내고 / 영하의 칼바람에도 스러지지 않는 / 작은 호롱불 하나 밝혀두어야겠다. / 그리고… 차갑고도 빛나는 겨울의 춤을 익혀야겠다. /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 끌어안으면 겨울은 오히려 따뜻한 것….”
우리반에선 국어시간에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다. 몇은 딴전을 피고 몇은 건성으로 듣는 게 보였지만 여러 아이들은 귀를 쫑긋하며 듣기도 했다. 모든 아이들이 시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일주일에 단 몇 분만이라도 시를 가까이 접하는 게 나쁠 건 없으리란 생각이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때라 공연히 마음이 분주하고 또 새 천 년이 시작되는 해라서 들뜨기도 하지만 한 주일을, 하루를 차분하게 맞이하고 보내는 자세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 시를 읽어 주었다.
털어 버려야 할 것과 지니고 가야 할 것도 생각했다. 슬픔과 허무, 무의미한 삶과 탐욕, 시기와 질투, 싸움과 죽음, 파괴와 억압, 이런 것들은 묻어 두고 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기다림, 희망, 사랑, 화해, 용서, 생명, 창조, 평등, 이런 것들은 꼭 지니고 갔으면 좋겠다. 그런 이름들을 어둠 속의 호롱불처럼 밝혀 두고 새 아침을 맞았으면 좋겠다.
내 안의 좌절과 비탄, 조급증과 욕심이 나를 무너지게 할 때마다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이런 시를 읽으며 다시 창문을 열고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고 싶다.
천천히 더 천천히, 차분히 더 차분히 새로운 날들을 준비하고 내 안에 삐걱이는 것들을 바로잡아 나가고 싶다. 못을 치고 걸레질을 하고 먼지를 털어 내고 싶다. 흔들릴 때마다 시 한 편씩 읽으며 흔들릴 때마다 시 한 편씩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