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어학연수할 때 일이다.
학비와 기숙사비는 부모님이 나중에 송금해 주시기로 하고 달랑 10달러만 들고 미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학비와 기숙사비 등록마감일을 코앞에 두고도 돈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시골집으로 전화해 보니 아버지께서 오늘 막 송금했으니 이삼 일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삼일 뒤 돈을 찾으러 갔는데, 이럴 수가!
은행직원 실수로 돈이 한국으로 반환되었다는 게 아닌가!
한국 쪽 은행에 국제전화를 해보았지만, 처음부터 송금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는
차가운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다. 암담했다.
기숙사야 방을 빼고 친구집에서 신세를 진다지만, 당장 학비가 문제였다.
터덜터덜 기숙사로 돌아오고 얼마 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목소리에 왈칵 눈물 먼저 쏟아졌다.
놀라 다그쳐 묻는 친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통화 끝 무렵 친구는 책 한 권 보낼 테니 받아 보라고 했다.
다음날 내 앞으로 기업체에서 아주 급하고 중요한 우편물을 보낼 때나 쓰는
특급 소포가 배달되었다. 친구가 보낸 책이었다.
일반우편으로 천천히 보내도 될 텐데, 왜 이 비싼 특급 소포로 보냈을까 의아해하던 나는
책을 펼쳐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책갈피마다 빳빳한 달러가 한 장 한 장 가지런히 꼽혀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편지를 읽으며 눈앞이 흐려졌다.
"연화야, 마침 아르바이트비를 탔는데 딱 네 학비 정도 되는구나.
네 덕분에 은행 가서 처음으로 환전 해봤다.
달러는 왜 이렇게 쬐그마냐? 혹시 분실될까봐 특급 소포로 보낸다.
힘내! 그리고 힘들 때 전화하고..."
태연아, 지금도 무척 고맙고, 열심히 공부해서 두 배 세 배로 갚을게.
너의 우정에 감사한다!
정연화 님/ 대전시 중구 선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