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국경마을 모얄레에서 현지인 의사 디다네 집 저녁식사에 초대되어 갔는데,
집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주 좋은 교욱을 받고 이 동네에서 이름난 병원을 경영하는 원장 집이라는 곳이
방 하나와 부엌, 응접실이 딸린 아주 작은 집이다.
집 안에는 꼭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와 집기들밖에 없다.
자기는 혼자 사니까 옷 몇 벌을 넣을 튼튼한 장과 편안한 침대 그리고 글을 쓸
책상과 걸상 정도만 필요하고 나머지는 짐만 되고 신경만 쓰인다고 한다.
필요한 것만 가지고, 그 최소한의 것을 쓸 때마다 고맙게 생각하는 건 바로 내 삶의 모토 아닌가.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사가 되려고 돈돠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 공부했을 텐데, 왜 이런 시골에서 병원을 하세요?"
"저는 돈과 명예를 얻으려고 공부한 게 아닙니다. 내가 태어난 이 모얄레 근처에는
예나 지금이나 말라리아나 콜레라같은 손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지키는 게 제 꿈입니다."
"대단하시군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나이로비에 있으면 저는 그저 여러 의사 가운데 한 사람이겠지만
여기서는 아주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보람을 느낍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합니까?"
끝까지 겸손함과 진지함을 잃지 않는 흑인 의사 디다.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대낮에 강도가 횡행해도 사람들이 눈도 깜짝 않는 케냐에
이런 사람이 있다니! 디다 같은 소수의 양심이 이 나라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바람의 딸 걸어서 지금 세 바퀴 반1>, 한비야, 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