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얼어붙은 뜰을 거닐면서 나는 불안해진다.
이번에도 봄이 오면 꽃은 피어날까?
봄이면 새싹이 트고 가을이면 여물어 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사람들은 웃을 것이다.
제목은 잊었지만 펠리니의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다.
날로 늘어나는 공장들이 주택가를 잠식해 가고,
그 굴뚝에서 뿜어내는 매연으로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어 간다.
그 곳을 어린 꼬마가 엄마의 손에 매달려 걷다가 묻는다.
"저게 뭐야?"
"공장이 토해 내는 매연이야."
"매연이 뭔데?"
"공장의 배설물, 방귀 같은 거지. 그것은 맑은 공기를 더럽히는 독이란다."
"그럼 새들이 날아가다가 그 독을 마시고 죽어 버리겠네. 가엾어라..."
담담한 듯하면서도 피를 토해 낸 듯한 펠리니의 경고를 귀담아듣고
눈여겨 본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모든 사람에게 그 심각성이 제대로 인식되었더라면 지구는 이 지경으로
황폐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산자락은 깍이거나 잘려 나가고,
한때 맑은 물이 풍성하게 흐르던 곳은 폐수로 썩어 가고,
곳곳이 쓰레기장이 돼 버렸다.
그렇게도 묵묵히 참고 견뎌 온 지구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몸부림치면서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해마다 가뭄은 길어지고, 봄은 더욱 짧아지고,
나날이 산성화되어 가는 땅에서는 낙엽조차 제대로 썩지 않는다.
왜 이 지경이 되고 말았을까.
열매를 거두면 다시 씨를 뿌리고, 배설은 그것을 다시 맑게 하는 정화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화를 망각하고 배설에만 탐닉해 왔다.
아무리 약한 동물일지라도 새끼가 위험에 처할 때 그 어미는 목숨을 걸고
위험에 맞서 싸운다.
그런데 우리의 귀여운 아기들이 살아가야 할 이 지구가 끔찍하게 허물어져 가고 있는데
엄마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원입네 조기유학입네 하고 아기들을 폐허로 내모는 일이 어찌 다음 세대를
키우는 엄마가 할 일이겠는가.
내 귀여운 아기의 미래가 달린 지구, 참혹하게 망가져 가는 단 하나뿐인 이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모든 엄마들이 기도 드릴 때, 나는 다시 내 조그만 뜰을 거닐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중얼거릴 것이다.
봄이 오면 내 뜰에도 꽃은 다시 활짝 피어날 것이라고.
음악평론가 이순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