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박사는 몇 명의 외국인과 함께 독일을 여행하던 중 공원에서 한 무리의 소년들을 만나 사인을 해주었다.
그런데 사인이 끝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가 오는 바람에 그는 급히 자동차를 타려다가
그만 만년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잠시 뒤에 창 밖을 보던 필 박사는 자신의 만년필을 든 채 달려오는 소년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만년필 하나 쯤이야’ 하는 생각에 차를 멈추지 않고 창 밖으로
소년에게 만년필을 가지라는 뜻으로 팔을 흔들어 보였다.
곧 자동차를 필사적으로 뒤쫓아오던 소년의 모습도 희미하게 작아졌다.
그 뒤 육 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필 박사는 다 찌그러진 그의 만년필과
한 통의 편지가 들어 있는 소포를 받았다.
필 박사님께
그날 선생님의 만년필을 우연히 가지게 된 소년은 제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만년필을 들고 온 다음날부터 선생님의 주소를 알아내려 애썼지요.
그것은 겨우 열세 살 어린아이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들은
꼭 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주어야 한다며 포기 하지 않았답니다.
그러기를 오개월, 어느 날 아들은 우연히 선생님의 글이 실린 신문을 보고는
그 신문사를 직접 찾아가서 주소를 알아왔습니다.
그때 기뻐하던 아들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한달전 “어머니, 우체국에 가서 그 박사님께 만년필을 부쳐 드리고 오겠습니다.”는
말을 남긴 채 훌쩍 집을 나선 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무작정 우체국으로 뛰어가다가 달려오는 자동차를 미처 못 본 것입니다.
다만 그 애가 끝까지 가슴에 꼭 안고 있었던 만년필만이 제게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찌그러졌지만 이 만년필을 박사님께 돌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애도 그걸 원할 테니까요.
한 독일 소년의 정직한 마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