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4년 스리랑카의 세레니키아 대통령은 임종을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내가 죽거든 나의 눈을 떼어 앞 못보는 사람을 위해 쓰게 하고
콩팥도 인공 신장기에 매달려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 쓰도록 하라”고 유언했다.
가족들은 그의 유언에 따라 대통령이 숨을 거두자 곧 안구와 콩팥을 떼어
이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이식시켰다.
자기 희생,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희사할 수 있는 몸뚱이의 일부까지
남을 위해 바치려는 마음이야말로 티끌하나 묻지 않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다.
그러나 굳이 외국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의 주위에서 그런 사랑들을 발견할 수 있다.
몇년 전 한 청년이 아주 나쁜 짓을 저질렀다.
그는 곧 재판에 회부되었고 결과는 사형이었다.
그 소식은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졌고 그는 가정파괴범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세상의 말세, 인간애 상실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는 얼마 뒤 사형수로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사람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그를 점점 묻어 버렸다.
92년 12월 30일 반포동에 위치한 강남성모병원에서는 한 남자가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떨고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으로 왼쪽 눈을 뜰 수 없었고
오른쪽 눈마저 시력장애로 잃고 말았다.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생계마저 위협당하는 어둠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는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그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을 찾았고
각막이식수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안구를 기증하려는 자는 턱 없이 모자랐다.
그는 더더욱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안구를 기증하려는 사람이 나타났고, 곧이어 수술을 받았다.
이제 그는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눈을 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는 바로 모두가 잊고 있던 사형수였던 것이다.
그 사형수는 그날 아침 죽음을 맞게 되었고 자신의 안구와 장기를
기쁜 마음으로 나눠 주었다.
의붓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한 반인륜아는 그 흉악함 만큼이나 어려운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