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님, 축하해 주세요. 올해 쉰여섯 살 우리 오빠가 처음으로 24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하셨답니다.
오십이 훨씬 넘어 작은 아파트 하나 산 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요?
물려받은 재산 한푼 없이 오빠 혼자 벌고 올케가 알뜰하게 살림해 삼남매 공부시키고 마련한 집이거든요.
가난한 집 외아들, 배움도 짧은 오빠는 노동을 해 가정을 꾸렸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오빠는 돈 욕심내지 않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오빠의 품성을 잘 말해 주는 일이 있답니다.
중동 붐이 한창이던 80년대, 오빠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가 몇 년 고생하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한 회사에 이력서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 달 벌어 그 달 생활하는 빠듯한 형편에 연락 오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오빠는 리어카 하나를 사 강냉이를 한 자루 싣고 고물장수를 시작했습니다.
빈 병, 헌책, 폐지, 고철을 강냉이와 바꿔 주고 다시 고물상에 되파는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할머니 한 분이 못 쓰는 금고를 하나 들고 오셨더랍니다.
오빠는 금고는 처음인지라 값을 얼마나 매길까 난감해하다 천 원을 드렸답니다.
그런데 고물상에 되파니 만 원을 주더랍니다.
아마도 여느 사람 같으면 '오늘 수입 괜찮다'며 좋아했을 텐데, 오빠는 다음날
할머니를 찾아가 "제가 고물 값을 잘 몰라 너무 조금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는
오천 원을 더 드렸삽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가족은 모두 잘했다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하늘이 그 착한 마음을 언젠가 알아 줄 거라고 했답니다.
오빠는 지금도 변함없이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며 착하게 삽니다.
착한 오빠를 앞으로도 건강하게 지켜 달라고 저는 기도한답니다.
이향희 님/ 서울 광진구 구의3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