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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서러운 서른 살

     날짜 : 2002년 12월 12일 (목) 3:18:24 오후     조회 : 750      
지난여름 이름 모를 병에 시달려 회사도 그만두고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왔다.
전부터 잘나지도 않은 딸에게 기대가 많던 아버지, 그런데 서른이 다 돼 몸까지 아파
내려와 있으니 부모님 볼 낯이 없었다. 시집 안 가냐는 소리에 "내가 시집을
마흔에 가든 쉰에 가든 똑같은 남자일 텐데, 조금 일찍 간다고 더 좋은 사람 만난다는
법 없잖아!" 하며 너스레를 떨지만 내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 삼아 자전거라도 타라는 엄마의 말에 대낮에는 동네 사람 보기
민망해 해질녘쯤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렸다. 그런데 집으로 들어서는 내게
아버지가 버럭 고함을 치셨다. "다 큰 기집애가 밤늦게 어딜 그렇게 쏘다녀?"
아버지의 이 한마디가 얼마나 서럽던지 밤새 울었다.
아버지는 엊그제 밤에 동네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나가셨다가 컴컴한 시골길에서
트럭에 치었던 터라 걱정이 돼 그러신 건데, 내게는 늦도록 시집도 못 간 기집애가
병까지 들었다고 구박하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처음 알았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
내 생각만 하는 이기주의자가 된다는 것을. 그날 밤 아버지는 내 훌쩍이는 소리에
밤새 잠을 못 이루시며 무척 속상해하셨다고 한다.
"아버지! 항상 고맙고 미안해요. 설마 혼자 늙어 죽을까? 용한 점쟁이도 시집 늦게 가라잖아.
꼭! 아버지 맘에 드는 신랑감 골라 결혼할 테니 걱정 콱 붙들어 매셔요."
나중에 내 신랑 될 사람 만나면 막 때리며 말해 줘야지.
"젊고 예쁜 내 모습 못 보고 다 늙어서야 나타나면 어떡해?
그래도 우리, 스무 살 열정으로 멋지게 살아 보자!"


전현진 님/ 광주시 북구 일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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