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산부인과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할 때였다. 저녁 당직을 서며 산모들을 둘러보다가 한 산모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그녀는 수술대에서까지 양말을 안 벗으려고 해서 내가 짜증을 낸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결혼 전 잠깐 사이비 종교에 빠져 엄지발가락을 자른 일이 있었고, 남편에게 무척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양말을 벗지 않으려 했구나,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는 좋지 않은 집안 형편에 아기까지 건강이 안 좋아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내가 아기를 안고 부부와 함께 병원까지 가 주었더니, 그녀의 남편은 고맙다며 한사코 내게 2만 원을 건네 주었다.
그게 인연이 되었다. 얼마 뒤 그녀와 아기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돈도 돌려줄 겸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반갑게 나를 맞아 준 그녀는 국수를 삶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가 상을 들고 왔다. 내 앞에 상을 내려놓는 그녀의 콧잔등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커다란 유리 그릇에 하얀 국수가 정갈하게 담겨 있고 그 옆엔 통깨, 참기름, 풋고추, 마늘을 듬뿍 넣은 양념장이 있었다. 양념장에 국수를 비벼 한 입 먹는데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참으로 맛있었다. 내심 한 그릇 더 먹었으면 했는데 내 마음을 읽었을까? 국수를 한 그릇밖에 삶지 못했다고 그녀가 조그맣게 말했다. 아뿔사! 그녀에겐 국수 한 그릇 더 삶을 여유가 없다는 걸 잠시 잊었던 것이다.
그녀의 집을 나서면서 정말 행복했다. 국수 한 그릇이었지만 정성이 깃들면 이렇게 맛있고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살아가는 순간 순간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신현주 님 / 서울 양천구 목동
- 아마도 행복이란.. 그것을 느끼려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 오늘 점심엔 국수..? ^^ .. Young-pur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