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진정한 용기는 책임지는 것 - 월간 '좋은생각(2001년 10월)' 에서 발췌.
\"결혼은 꿈만 먹고 사는 게 아냐. 어디까지나 현실이라구!\" \"휠체어 탄 남자랑 살려면 적어도 날마다 밥상 차려서 갖다 줘야 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사람 업고 뛰어야 하는데 네가 할 수 있겠어?\"
반신불수로 성한 곳이라고는 오른쪽 팔과 다리뿐인 내가 휠체어에 의지해 사는 그와 결혼하겠다고 선포했을 때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도 그럴것이 나의 상태로는 밥상 하나도 제대로 들 수 없고 위급상황이 생기면 그 사람을 부축하기는 커녕 나 혼자 도망치기도 힘겨운 형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반대로 그를 포기하기엔 나는 이미 푹 빠져 있었다.
\"걱정 마. 밥상을 못 들면 방안에 상을 놓고 반찬을 한 가지씩 나르면 돼. 그리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119를 부르면 되지 무슨 상관이야.\"
나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그 사람에게로 달려왔다. 그러나 결혼은 역시 주위의 염려대로 꿈만 가지고 사는 환상이 아닌 냉정한 현실이었다. 당장 끼니를 때울 쌀이 없었고, 궁리 끝에 나는 신혼 방 한쪽 구석에 과자 몇 봉지 진열해 놓고 구멍가게를 시작하였다. 한겨울엔 싸늘한 방을 데워 줄 나무를 해 오는 나뭇꾼이 되어야 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가파른 산을 오르자니 걸핏하면 미끄러져서 발목을 삐고 무릎이 까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대로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얼어죽을 수만은 없었기에 기를 쓰고 산을 오르내렸다. 내 남편은 그 몸을 해 가지고도 보잘것없는 구멍가게를 키워 나가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남편을 위하여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세숫물을 준비하였고 남편은 나를 위해 마늘을 까 주고 파를 다듬고 거칠어지는 나의 손등에 로션을 발라 주었다. 나는 남편의 두 다리가 되어 주었고 남편은 나의 비틀어진 팔을 대신해 주면서 어느새 우리는 15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했다. 스물두 살의 반신불수 처녀가 열두 살 연상의 휠체어 탄 남자의 아내가 되기로 했던 일은 대단한 용기였고, 우리는 그 만남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고 서로에게 충실하며 살아왔다.
진정한 용기란 무조건 저질러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것을 지켜 내어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