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여름, 내가 5학년 때였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분으로 당시 한국전력공사에서 일하셨는데, 아버지 월급만으로는 우리 다섯 식구 먹고 살기가 힘에 겨웠다. 부모님은 하루도 돈 걱정 안 하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어김없이 찾아온 장마철, 그날도 장대비가 주룩주룩 쏟아졌고, 어느 가게 주인아저씨가 “비 오는데 어린 녀석이 고생한다” 며 음료수를 하나 주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와 다음 집으로 향하는데 저만치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우산도 쓰지 않고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전기요금을 수금하러 다니고 계셨다. 순간 코끝이 시큰해 왔다. 문득 들고 있던 음료수가 생각나 울음을 참고 아버지에게 뛰어갔다.
“아버지, 왜 우산도 안 쓰고 다니세요?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떡해요?”
그러자 아버지는 “요놈아, 너나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하며 내 옷을 더 단단히 여며 주셨다. 난 아버지에게 음료수를 내밀었다. 하지만 너나 먹으라며 자꾸만 마다하시기에 우격다짐으로 아버지 손에 쥐어 드리고는 자전거를 타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좀 멀리 와 뒤돌아보니 장대비 속으로 사라져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참았던 울음이 왈칵 터져 나왔다.
배달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난 멈칫하고 말았다. 아버지에게 드렸던 음료수가 거기 얌전히 놓여 있었던 것이다. 왜 드시지 않았냐고 여쭈었더니, 아버지는 “너 먹는 거 보는 게 난 더 좋지” 하며 빙그레 웃으셨다.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마음은 세상 그 어떤 사랑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황창근 님 / 충북 충주시 매하리
- 부모 보다 앞서가는 생각을 하는 자식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Young-pur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