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외딴 암자(庵子)에 ‘밤손님’이 내방(來訪)했다.
밤잠이 없는 노스님이 정랑엘 다녀오다가 뒤꼍에서 인기척을 들었다.
웬 사람이 지게에 짐을 지워놓고 일어나려다 말고 일어나려다 말고 하면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뒤주에서 쌀을 한 가마 잔뜩 퍼내긴 했지만 힘이 부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스님은 지게 뒤로 돌아가 도둑이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지그시 밀어주었다.
겨우 일어난 도둑이 힐끗 돌아보았다.
"아무 소리 말고 지고 내려가게" 노스님은 나직이 타일렀다.
이튿날 아침, 스님들은 간밤에 도둑이 들었다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노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後)로 그 ‘밤손님’은 암자의 독실(篤實)한 신자(信者)가 되었다는 후문(後聞)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 중에서
따지고 보면, 본질적(本質的)으로 내 소유(所有)란 있을 수 없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것이 아닌 바에야 내 것이란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여 가 버린 것이다.
더 극단적(極端的)으로 말한다면, 나의 실체(實體)도 없는데 그밖에
내 소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한동안 내가 맡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