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모사이트에서 가져온 민경룡님의 글입니다⊙
나무꾼이 선녀 목욕하는 것을 보고 옷을 숨겨 결혼한 옛날 이야기의
역사적 상황을 오늘 접맥하면 어디다 견줄 것 인가? 고민하는 쉼터생활이다.
어저께는 필리핀을 모국으로 둔 여인이 이 백성의 주민등록이 있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입소했다. 속눈썹이 길고 눈이 예쁜 7개월된 아들과 3살된 딸을
데리고 온 필리핀 출신 여인은 한국말도 아주 능통하게 잘한다. 간략한 상담이
있었는 후, 이여인은 이땅에 이주 노동자로 와서 농촌출신 늦깍이 총각과
결혼한 코시안이었다. 타향만리에서 결혼한 이 여인은 유교관념에 강한
이땅에서 아들을 낳기위해 딸을 둘 낳았고 그리고 막내 아들을 낳았다.
가문에 대를 이을 중요한 의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타와 폭력을
당하고 정작 본인은 이나라 국적도 취득하지 못하고 도저히 같이 살수가 없어
남편 몰래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진정 갈곳이 없어 쉼터로 오게 되었다.
나무꾼은 이제 아이들 둘을 선녀가 낳았으니 하늘에는 올라가지 못하겠지
하고 안심하던차에 양손에 아이들을 앉고 올라갔다는게 나무꾼의 결말인데
이 코시안의 모친은 셋이나 낳고도 쉼터로 도피해 올 수밖에 없었다.
“아끼고 사랑해도 하늘로 본향찾아가거늘!”
“하물며 인간대접하지 않는데 무슨 사랑이었으리오!”
물론 언어도 다르고 식생활이며 문화습관 삶의 양식이 다르다 또 우매자
군부 독재자들의 농업불가론은 농민을 간접추방했고 학교며 삶의 공간과
농촌문화를 도말했다. 안으로 밖으로 농민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어렵게 찾고 찾은 선녀를 이렇게 몰 대접할수 있는가?
코시안!! 앞으로 가면 이 사회적 문제는 이땅의 혼과 얼의 문제요 민족정신
문제가 되도록 각박하게 하고 있다. 얼킨 씨줄과 날줄을 풀길도 막막하겠지만
이 선녀들의 생을 보장해야한다. 그러나 생명이라는 큰 틀안에서 인권과
보편적 인간화 즉 복지는 전당포에 가고 사라졌다. 농사꾼만해도 서러워라
커녕 돌아보지 않는 사회인데 그의 아내 코시안은 날개를 찾아도 날아갈곳은 없다.
오늘도 나무꾼을 유혹하는 “배트남 여인 있습니다” “필리핀 여인 있습니다”
결혼하실분 없습니까“ 라는 현수막은 곳곳에 나돌고 ”코시안“ 그 아이도
한국인이면서 이국여인의 아들 딸로 소외되어 저 북쪽의 꽃체비들처럼
떠돈다. 이 남북동포들이 언제쯤 정신을 차릴거나??
“아! 이들이 날아 갈곳은 어디메뇨!” 이제는 사회복지라는 개념확장의 아니라
우리의 아들 딸들을 새롭게 기억해야 한다. 선녀를 선녀로 대접할 농사꾼이
되도록 농민의 삶에도 자녀교육기관과 삶의 희망을 주고 양성평등의 깊이도
더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