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 드라마 <그녀가 돌아왔다>는 심장마비로 쓰러진 여자 주인공이
지하 연구실의 냉동캡슐에 갇혀 있다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거의 죽음에 다다른 사람을 얼려 오랜 시간 뒤에 녹여서 생명 현상을
이어가도록 하겠다는 인체 냉동보존술이 드라마적 장치로 쓰인 셈이다.
드라마에서 냉동인간은 기적처럼 깨어나 시대를 뛰어넘어 부자를 둘러싼
‘삼각 사랑’에 빠진다.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 험악한 죄수들을 냉동감옥에
가두었던 것처럼 인체 냉동보존술은 극적인 상황을 유도하는 데 적격이다.
게다가 인체 냉동보존술은 부유한 환자들이 최후에 선택하는 ‘미완의 치료법’
으로 과학기술의 발달에 기대어 ‘현대판 부활’을 꿈꾸게 한다.
냉동캡슐에 들어간 환자들의 미래는?
정말로 냉동인간은 드라마나 영화처럼 부활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믿는 사람이라면 딸기를 냉동시켜볼 필요가 있다. 냉동인간 부활에
관한 논리적 허구를 눈으로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냉동 과정에서 각 세포에 들어 있던 수분이 팽창해 세포막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 이를 해동하면 세포 안의 끈적끈적한 물질들이 흘러나와 딸기는 묽은
밀가루 반죽에 가깝게 된다. 이것이 해동된 냉동인간의 뇌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냉동보존술로 생명 현상을
복구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령 면역 거부 반응이 없는 인공심장이
개발되더라도 깨어난 냉동인간에게 이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가 냉동캡슐에 속속 들어가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인체 냉동보존술을 미래산업으로 여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있는 ‘알코르 생명연장 재단’을
1972년에 설립한 에프엠 에판디어리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인간을 죽음이라는
원죄에서 영원한 생명을 통해 구원하겠다는 과학자로 이름을 ‘FM-2030’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는 자신이 100살이 되는 2030년에 인간 냉동보존술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것이라 예측하며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냉동보존술
의 미래를 확인할 수 없었다. 2000년 7월 췌장암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물론 그는 부활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화장이나 매장을 택하지 않았다.
이미 액화질소로 채워진 냉동탱크 100여개가 늘어선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에판디어리처럼 냉동인간이 되려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단 시신을 얼음통에 넣은 뒤 심폐소생기로 호흡과 혈액 순환 기능을
복구해 산소 부족으로 뇌가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다음 피를
뽑고 정맥주사를 놓아 세포의 부패를 최대한 지연시켜 냉동캡슐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보내는 게 좋다. 냉동캡슐이 있는 보조시설에서는
시신의 가슴을 절개하고 늑골을 분리하며 혈액을 모두 제거한 뒤 기관의
손상을 막는 특수 액체를 넣는다. 물론 특수 액체라 해서 냉동 과정에서
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온도가 급속히 떨어지면
물이 얼음으로 바뀌면서 부피가 10%가량 증가해 세포 구조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나노가 세포 소생을 도울 수 있나
이렇게 세포 파괴로 인해 냉동인간 소생을 낙관할 수 없는 냉동보존
연구자들은 나노기술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 미세한 기계가 해동 중인
인체 내에 투입되어 수조개에 이르는 세포들을 하나하나 복구한 다음 환자를
소생시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세포를 수리하는 ‘나노로봇’이 분자수술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려면 그야말로 만화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예컨대
수십 나노미터(nm) 크기의 로봇팔들이 세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골라내어
붙이기를 무수히 반복하는 식이다. 나노로봇이 세포 수술의 집도의 구실을
하는 셈이다. 이런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냉동인간이 소생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노 연구자들은 혈관 벽에 붙은 찌꺼기를 제거해
동맥경화를 치유하는 것처럼 나노로봇이 세포를 복구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나노기술에 힘입은 세포 소생을 신념으로 간직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인간의 뇌를 복구하는 것은 상상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뇌는 신경세포라는 구성 성분들의 복잡하고 방대한 연결 회로다. 100억개
이상의 신경 세포로 가득 찬 뇌에서 신경세포 하나는 다른 신경세포 1천여개
에 이어진다. 이 회로를 모두 연결하면 무려 10만km의 배선을 이룬다.
이런 방대한 배선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생명 소생이 오히려 불행을
부를 게 틀림없다. 게다가 뇌의 작용 메커니즘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심지어 색깔 하나를 인식하는 과정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답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뇌를 복구해 의식을 되찾는다는 것은 허황한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냉동인간의 소생을 도울 이상적인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신의 해동 과정에서 세포 내부의 특정 부위마다 다른 종류의 냉동억제제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면 세포 손상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세포의 특질이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선택적 냉동억제제를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냉동억제제를 환자의 체내에 주입해 인체 각 부위로 확산시키는
기존의 방식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해동 속도를 조직의 특성에
맞게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조직에 따라 급속 혹은 저속 해동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역시 냉동억제제가 신경세포에 가하는 물리생화학적
손상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가설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쥐를 동면시키는 실험은 성공했다
현재 냉동보존술 연구자들은 냉동이나 해동 과정에서 이뤄지는 분자와 원자
수준의 손상을 규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냉동 상태의 뇌를 분자 수준에서
분석한 뒤, 뇌 조직을 분자 단위로 분해해 분자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정보를 이용해 정상적인(냉동 이전) 조직 상태에 걸맞게
분자들을 다시 배열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근본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조립된 뇌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뇌수술 후유증으로 자신이 사용하던 언어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일부 연구자는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는 원자와
분자의 배열뿐만 아니라 ‘생명력’ 같은 요소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든 냉동인간이 해동에 성공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수두룩하다.
아무리 냉동보존술이 죽음이라는 원죄를 씻어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해도
0보다 조금 높은 부활 가능성에 1천만원(전신냉동 12만달러, 머리냉동은
5만달러) 안팎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인체 냉동보존술이 기술적 장벽에
가로막혀 냉동인간이 깨어나는 시기는 기약을 할 수 없는 처지다.
이런 가운데 인공동면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에일리언> 등에 나왔던 것처럼
우주인들을 동면시키고 암 환자나 외과 수술 환자를 인위적으로 동면시켜
치료를 쉽게 하는 것이다. 이미 쥐를 동면시켰다가 부작용 없이 깨어나게
하는 실험이 성공리에 이뤄지기도 했다.
인공동면은 썩은 계란 냄새가 나는 기체 황화수소를 통해 이뤄졌다.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학과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 연구팀은 쥐를
‘황화수소’(H2S) 80ppm이 주입된 공간에 넣었다. 수분 만에 쥐는 움직임을
멈추고 의식을 잃었다. 호흡이 분당 120회에서 10회 미만으로 줄고
체온은 36.7도에서 11도까지 떨어지고 신진대사율은 90%나 감소했다.
만일 사람을 인공동면에 빠뜨린다면 정상세포를 동면시킨 뒤 암세포만
집중 공격하는 것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혈동물과 냉혈동물의
경계가 과학의 힘으로 무너지는 셈이다. 지금의 과학기술로 수준에서
인간이 액화질소에서 부활하기는 힘들어도 황화질소에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기대해볼 만하다.
[한겨레21 2005-07-15 18:12]
사랑은 위안이다..
07.28
10년정도만 냉동되고 싶어라~ㅋㅋ
07.28
공부를 조금 더(ㅋㅋ) 잘했더라면 저런거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저런거 연구하는 사람들 옆에서 심부름이라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