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netporter
지금 사이버공간이 온통 '개똥녀' 얘기로 들끓고 있다. 지하철 바닥에
애완견의 배설물을 방치한 채 내려버린 '예의 없는" 여성을 한 시민이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자 이른 본 네티즌들이 집중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일부 네티즌과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마녀사냥'이라며
우려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일보의 경우 6일 오전 5시 인터넷판에 「무서운 사이버 '인민재판'」
이라는 기사가 게재되자 '나도 한마디'에 첫 의견이 57초만에 오른 뒤로
7시간만인 낮 12시 현재 1천300여 건의 의견이 올라왔다. 이는 네티즌들의
관심이 얼마나 깊은지를 말해주고 있다.
'개똥녀'에 대한 네티즌의 질타에 언론도 거들고 있다. 한 일간지는 7일자
신문에서 「애완견 배설물 방치한 개똥녀의 '더러운' 양심」이라는 주제목과
「치워라 지적에 되레 신경질」이라는 부제목을 붙여 사건 경위를 보도했다.
기사내용은 비교적 객관적이지만, 제목만으로는 호되게 질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5일 밤부터 인터넷 사이트에 떠돌아다니는 개똥녀에 대한 2장의 사진은
한 여성이 강아지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는 장면과 이 강아지가 싼 것을
보이는 배설물을 치우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사진을 올린 사람은 설명글에
서 '이 여성이 애완견의 항문만 닦아주고 애완견과 '까꿍'하며 장난을 치는 등
배설물을 치우라는 주위 승객의 핀잔에 아랑곳하지 않아 기가 막혀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올렸다'고 밝혔다.
이를 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비난하는 쪽이다. '매너가 없다',
'저질이다', '정말 감당 안 되는 인간이다'라는 말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
'인간이기를 거부하네'라고 일침을 놓는가 하면, 아예 '혀를 깨물어라'는 등
극단적인 언사를 쓰면서 비판하고 있다.
그래도 일부 네티즌은 '이번 일을 반성의 기회로 삼으시길…', '순간적인
실수를 보고 죽을죄를 지은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너무하다', '개똥녀가
큰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집중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것은 사이버
테러행위나 마찬가지이다', '그 여성도 이제는 충분히 반성을 했을 테니,
네티즌들이 자제해야 한다'라는 등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개똥녀'의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은 채 올려졌다는 점이다. 잘못된
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그녀의 신원이 「A대학 OO학과
2학년 휴학중. 나이 25세. 김OO」라는 엉터리 내용까지 인터넷에 오르는
바람에 그녀가 다니지도 않는 B대학 사이트가 한동안 마비되기도 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개똥녀에 대한 안티카페가
생겨났고, 개똥녀를 소재로 한 각종 패러디물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하는 말로 '구경난 일'만 생기면 사람이 몰리듯 한 현상이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네티즌들의 속성을 뉘라서
말릴 수 있겠는가.
'개똥녀 사건'과 관련하여 오늘 아침 신문들의 논조는 자못 엄숙하다.
어제까지는 그녀의 행동에 대하 '형편없는 짓'이라는 분위기였는데, 하룻밤
사이에 언론 본연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마녀사냥'이라는 말에 이어
'인민재판'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개그맨들이 유행시킨 '그때그때
다르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중앙일보에서는 8일자 사회면에 「무서운 사이버 '인민재판'」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일을 비롯하여 최근에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관한 기획성 기사를 싣고 있다. 골자는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인터넷의 고발·소문 등이 게시판이나 댓글을 타고 특정인을 일방적으로
매도·재단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기사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니 백번 옳은
내용이어서 네티즌이면 누구라도 한번 읽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사이버폭력에 피해를 입은 사람을 위하다보니 '제목'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들을 매도하는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부 또는 다수의 네티즌들이 사이버공간에서 무책임하게 자신의
생각을 떠버린다고 해도 신문에서 이런 식의 제목을 달아서 되는 것일까?
「무서운 사이버 '인민재판'」이라니…. 6·25전쟁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민재판으로 희생을 당했는지 알고 그런 용어를 썼는지 묻고 싶다.
'인민재판'이라는 용어를 함부로 쓰는 신문사의 용기(?)가 대단하다.
신문이 오히려 '인민재판'식 제목을 단 것 같아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지금 네티즌들이 개똥녀에 대해 흥분하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개가 싼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객차에서 내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이 치워줄 것을 요구했는데도 묵살했고, 심지어 미국식 욕이라고
할 수 있는 가운데 손가락을 뻗는 행동을 취했다. 물론 반성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을 보면서 6·25동란 직후인 1950년대 중반에 일어났던 '박인수 사건'
이 생각난다. 박인수라는 희대의 바람둥이가 여대생을 포함한 70여명의
여성을 농락한 사건인데, 그때 재판을 맡았던 판사가 '법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조를 보호한다'는 명언을 남기면서 박인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었다.
그렇다. 한 사람의 인격도 여성의 정조와 마찬가지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을 때'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다른 일은 몰라도
이번 '개똥녀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놓고 신문에서 사이버상의
'인민재판'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가 없다. 개똥녀가 취한 일련의
행동들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일이고, 그래서 네티즌들이 나무라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터넷시대에서 나타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사이버 여론재판'이다. 이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근거도 없는 내용을 갖고 무차별 비난·비방하는 데 있다.
사이버상의 여론재판, 즉 사이버테러 또는 사이버폭력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모른다. 신문에서 말하듯이 '인민재판'과 다름없는
경우도 흔하다.
이 같은 일들이 네티즌들에 의해 계속해서 자행된다면, e-세상의 앞날을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행위에 대해서는 한층 무거운 벌을 가해야 하는
동시에 예방을 위한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만 '개똥녀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놓고 현대판 '마녀사냥'이라거나 사이버상의
'인민재판'이라는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