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담론이 다양해지는 요즘, 여성들 사이에서 게이 친구 예찬론이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면서 섹스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게 게이 친구의 장점이다.
또 게이 친구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데다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있어
쿨하다는 주장도 있다.과연 여성과 게이 친구의 실제 관계는 어떨까.10년째
‘우정’을 쌓는 30대 중반의 동갑내기 여성과 게이 친구를 인터뷰했다. 여성은
이성애자다.이 남성은 친한 이들에게는 성적 취향을 숨기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커밍 아웃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뷰는 여성은 미셸, 남성은 기욤이라는 가명으로 진행됐다.
미셸은 자신의 직장과 이름을 공개해도 된다고 했으나 게이 친구가 말렸다.
올해 말에 결혼을 앞둔 그녀에게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우려해서다.
○ 신체 접촉 없는 정서 교감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기욤은 패션감각과 외국어 구사력, 세련된 화술을
지니고 있다.
12일 오전 기욤의 14평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 미셸은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었다. 미셸은 키가 170cm나 됐다. 기욤은 커피를
내오며 “일찍 인터뷰 온다기에 미셸에게 어젯밤 여기서 자라고 했다”고
말했다.
미셸은 기욤의 집에서 자주 잔다. 그녀는 부모에게 기욤의 집에서 잔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올해 말에 결혼할 미셸의 남자 친구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와 결혼을 앞둔 남자는 처음에는 황당해했으나 기욤을 만난 뒤
두 사람의 우정을 이해했다.
게이라 해도 육체적으론 남성. 그런데도 신체 접촉없이 한 침대에 들 수
있을까.
“하하. 여자 친구와 함께 자면서 서로 만지나요?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우린 가장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일 뿐인걸요.”(미셸)
○ “동성 친구의 변종이 아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이다. 업무상 만났는데 좋아하는 음식, 옷,
음악, 영화, 전자오락, 만화책이 딱 맞았다. 당시 오피스텔에 혼자 살던
미셸의 집에 기욤이 거의 매일 드나들면서 우정을 쌓았다.
퇴근 후 만나 침대 위에서 뒹굴며 함께 얼굴 팩을 하고 밤늦게 만화책을
읽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다. 기욤의 화장대 겸 식탁 위에는 ‘프레시’
로즈메리 골드 토닉 워터, ‘SKⅡ’ 페이셜 트리트먼트 팩, ‘겔랑’ 이시마 세럼 등
그가 쓰는 고급 여성용 화장품이 갖춰져 있다.
미셸은 생리 중일 때 기욤의 집에 찾아와 김치를 젓가락에 말아서 먹어
치운다. 그럴 때면 기욤은 “내가 그토록 아끼는 김치를…”이라고 눈흘기면서
도 “내가 그 고통을 모르니 어쩌겠어”라고 이해한다. 기욤과 미셸은
‘생리 리조트’란 그들만의 신조어를 쓰며 깔깔 웃는다.
둘은 이따금 “우린 중성인가봐”란 말도 나눴다고 한다. 섬세한 감성의
기욤과 달리 미셸은 시원시원하다. 기욤에 따르면 게이들은 글래머
타입보다 미셸처럼 시크(chic)한 여성에게 끌린다. 언젠가 “우리 관계가
동성 친구의 변종인가”라는 주제로 대화한 적 있는데, 결론은 “아니다”였다.
친밀한 ‘새로운 관계’일 뿐 ‘변이된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 연애 상담도 한다. 특히 기욤이 새 남자와 사귀려 할 때 미셸은 조언자가 된다.
미셸에게 물었다. 게이 친구가 좋은 가장 큰 이유에 대하여.
“상황에 따라 정서적으로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되는 것이죠. 또 무거운 짐을
들 때 기욤은 남자다운 근력을 보여주지요. 애인이 없을 때 파티에 파트너로
데려가면 외모 등에서 돋보입니다. 그러면서도 기욤에게는 남성 특유의
무심함이 약간 있어 여자 친구처럼 예민하게 행동하는 일이 없어요.”
게이 친구를 둔 여성은 허심탄회하게 이성에 대한 문제를 의논한다.
늦은 밤 남자와 술을 마시고 싶지만 끈적거리는 관계를 원하지 않을 때도
게이 친구가 좋다.
이 대목에서 기욤이 대화에 합류한다.
“결혼이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된 요즘 여성들이 게이 친구에게서 구속없는
안식을 얻는 것 같아요. 게이와 스트레이트(이성애자) 여성 간의 우정은
있어도 스트레이트 남성과 레즈비언이 우정을 맺는다는 사례는 들은 적이
없어요. 아마 여성은 정서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데 반해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늘 섹스를 생각하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