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멸감에 빠지고 말았다.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닌 나 자신 때문이었기에 그 깊이는 더욱 깊었다.
일요일에 친구와 함께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몇 일전에 약속해 둔 것이라 미루기도 곤란했다.
대충 타인으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차림새로 집을 나섰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약 20분 가량 약속장소인 자바커피에 먼저 도착했다.
천천히 친구를 기다릴 생각으로 카푸치노를 한 잔 시켜 가방에 들어있던 연금술사를 읽고 있었다.
어느 정도 책의 페이지 수도 넘어갔고, 시간의 흐름도 된 듯 해서 문득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았다.
이미 약속 시간보다 30분이 지난 후였다.
나는 흥분하기에 앞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허나, 연락이 온 것은 없었다.
서서히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여태 시간이 지남을 느끼지도 못한 채 책을 읽고있었음에도 끓어오르는 화로 나는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봤으면 됐을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슨 오기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난 뒤 가게의 문을 열고 누군가 헐떡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친구였다.
가슴이 멍멍해 졌던 이유는 왜였을까...?
친구는 미안함에 신통찮은 변명을 늘어놨지만, 도통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버럭 친구에게 소리를 질러 버릴 것 같아 더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여전히 내 앞에서 연신 변명을 하는 친구를 두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친구는 그런 나의 행동에 놀라 내게로 뛰어와 다시 한 번 사과를 했지만 나는 퉁명스레 말하며 내 팔을 잡은 친구의 손을 떼어냈다.
" 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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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친구를 홀로 남겨두고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의 표정이 어땠을까...?
친구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어쩜 나는 그것보다 친구에게 더욱 난폭하게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친구가 나를 그렇게 기다리게 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독한 내 고집으로 무작정 기다린 건 나니깐...
멀쩡한 귀를 가지고도 나는 친구의 말을 듣지 못했다.
내 안에 나쁜 녀석이 살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가끔씩 내가 나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로 인해 실연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실연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대면하기도 한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연신 자신의 팔을 이로 무는 사내와 같은 그 짓을 나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나는 자꾸 내 자신을 괴롭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