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해가 가려저야 덜 덥기 때문에 키가 크고 울창한 삼림속을 걸어야 하겠고 산행거리도 짧아야 하겠기에 지도에는 없고 인터넷으로 알게된 경기도 연천 동막에 있는 해발 520메타의 성산에 오르기로하고 낯 선곳이라 매제와 여동생 그리고 나와 집사람 넷이 7월23일 의정부에서 09:20분에 출발하는 경원선 열차를 타고 한 시간만에 연천역에 도착하여 등산로 입구 풍혈까지 택시요금 5,000원을 지불하고 도착하였다.기온은 섭씨 32-33도였다. 풍혈에서 찬 바람을 쏘인것 까지는 좋았으나 등산로 입구를 잘 못 찾아 첫발부터 경사 60도에이르는 가파른 능선을 오르게 되었다. 나무와 숲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오르기가 무척 힘들었다. 땀은 비 오듯하고 온몸이 홈빡 젖었다. 청년도 아닌 우리들에겐 무리가 아닌가 싶다. 6.25때 이런 돌격도 있었을까 의문이 날 정도다.
가까스로 359봉에 올랐을때 시간은 한시간 삼십분이 걸렸다. 자리를 피고 잠깐 쉬었나 싶었는데 벌써 한시간이나 지났다. 갈림길에 노란 리본 하나를 묶고 호랑 바위를 지나는데 멧돼지 어미와 새끼 두마리가 화닥닥 능선 아랫쪽으로 뛰었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 하기도 했다. 황갈색의 까실까실한 털이 귀엽게 보였다. 나중에 연천 기사 아저씨에게 들은 얘긴데 새끼를 건드리면 어떻게 알고 많은 멧돼지들이 뫃여든다고 한다.
어릴쩍 마귀할멈이 산다는 높다란 성벽처럼 200여 메타 길이의 깍아지른 수직 절벽을 오른쪽으로 돌아 폐 타이어를 이용한 참호의 510봉에 도달 했지만 나침판과 고도계가 없는 상태에서 "서쪽 분지를 지나" 5-6분 오르면 바로 정상이라고 했지만 아무런 안내 표지도 없는곳에서 막연한 것이였다.
더구나 울창한 나무들로 사면이 잘 보이질 않아 갈피를 잡지 못 했다. 2차 시도때 자세히 관찰 하였더니 길다란 나무 토막 하나가 묻혀 있었는데 빨간색으로 "산"이라고 써 있었고 그 밑에 볼펜으로 보일락 말락하게 화살표가 있고 그옆에 재인폭포라 쓴것을 보니 우리는 그때 넘실넘실 고개를 넘어 재인폭포 방향으로 갔던것이다. 그때 얼마나 혼이 났고 약이 올랐으면 계속되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두번째 산행을 단행 했을까? 오늘(8월4일) 우리는 굴하지 않고 도전 하는것이다.
준비 해간 고도계를 맟우고 나침판을 보았더니 서쪽으로 분지를 두고 북쪽으로 진행하니 금방 고도 520메타의 성산 정상이 나왔다. 그러나 7월 초행길엔 동쪽으로 계속 진행하여 가도가도 가로막는 봉우리만 3개를 지났는데도 정상을 찾지 못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력하게 됬었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시간, 나는 말 하였다. "탈출하자"고, 진행도 돌아갈수도 없으리 만큼 지쳐 있으니 좌나 우로 내려 가자고 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옷들도 모두 비 맞은것 처럼 흠뻑 젖었다. 준비 했던 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린 적은 나이가 아니다. 소시적 유격훈련때 "도피및탈출" 과목이 불현듯 생각 났다. 오른쪽 완경사쪽으로 무조건 내려가는 탈출을 시도하는데, 잡목이 빽빽하게 우거저 더 나갈수 없게 되자 실망이 느껴질때쯤 매제의 "형님 저쪽에 하얀것이 보입니다" 라는 말 소리에 오른쪽 밑을 바라 보았더니 계곡 아니면 길이라 생각되어 희망이 보였고 십여분 후에 계곡에 내려서 흐르는 물에 얼굴도 씻고 식수도 보충 하면서 한시간 반쯤 걸어 내려 갔는데 합수되면서 물의 양이 많아진 곳에 사람 소리가 들리자 우리는 그분들께 찻길을 물어 보면서 생기가 났다.
5-6분후 오봉사 절이 바라 보였고 우측에는 문화재로 등록이 되있는 "오봉사지부도"가 남근 모양으로 서 있었다. 그 골짜기 이름이 "허궁다리골짜기" 라는것도 나중에 알았다. 주차장을 지나면서 연천택시에 전화를 걸어 잠시후 우리 일행 네명은 승차후 안도감 속에 잠겨 연천역으로 향하였었다.
오늘은 정상에서 지장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식사후 북서릉을 타고 차도와 동막 계곡이 있는곳에 내려와 택시를 불렀더니 공교롭게 지난번 오봉사에서 지친 우리들을 태워 주셨던 분이였다. 구면이된 그분이 우리에게 대단한분들 이라는 인삿말에 안녕 하세요라고 인사를 드리며 연천역으로 시원스럽게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