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있었지만 연 이틀 비가 내리므로 기다리다가 6월13일 충남 연기군 전동면 미곡리,청송리, 전의면 동교리,신정리에 걸쳐있는 해발 460메타의 운주산에 오르기로 하였다. 비는 멈추고 구름이 얕게 깔려 일광은 약할것이며 비가 온 뒤라 산행 하기에는 쾌적한 날씨라고 판단 되었다.
운주산에는 충청남도 지방 문화재 기념물 제79호인 운주산성이 축성되어 있는데 성의 둘레가 3,210메타로 폭 2메타 높이2-8메타의 웅장한 백제산성으로 분지형의 산세와 수려한 풍치가 일품이다. 아직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백제사의 귀중한 유적지로, 서기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풍왕과 복신,도침장군을 선두로 일어 났던 백제 부흥운동군의 최후의 구국 항쟁지로 알려져 있다. 543메타의 내성이 있고 성내 구릉및 평지에 크고 작은 대지가 남아 있어 옛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08시25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09시54분 조치원역에 도착하여 30분 간격으로 있는 전의행 군내 버스를 타고 20분쯤 달리다가 개미고개를 너머 운주산 입구 표지판이 있는 매곡리에 하차 하였는데 운주산 까지는 도보로 700메타 거리였다. 마침 산 밑 동네에 사신다는 할머니 두분과 동행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는데 지루한 인도를 걷지 않고 논두렁 길을 따라 옛길을 안내 받아 산행하게 된것이 다행스러웠다.
항상 구름이 끼여있다 해서 운주산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산자락 매곡2리 마을에 들어서니 접시꽃 당신이 빨강색과 하양색으로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희미한 옛길을 밟으며,경사진 논두렁 길을 지나 가는데 논 물속에 사는 올챙이가 화들짝 놀랜다. 11시20분에 오르기 시작하여 고산사를 지나 잠깐 쉬었는데 이 산중에 웬 느티나무가 빽빽한지 군락지를 이루고 있었으며 저 아래 마을엔 밤나무가 하얗게 서리 맞은것 같았다. "광장-정상" 표지판을 지나 12시 10분쯤 8각정자에 도착하였고 잠깐 멈췄다 산행을 계속 하였는데 내 생각으로는 일단 정상에 다달으면 휴식하다가 산성을 한바퀴 돌까 했는데 그게 아니고 아예 등산로 자체가 성벽을 따라서 가고 있는것이다. 남한산성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나무들이 모두 키가 크고 울창해서 해를 가리게 되니 무더운 여름에도 오르는 수고만 하면 3.210메타의 운주산성 걷기는 큰 무리가 없으리라 본다. 아쉬운 것은 날이 흐려서 천안,청주,아산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없는 것이었다. 12시45분 정상에 도착하니 넓게 잘 다듬어진 광장에 연기군민이 세운 "백제의 얼" 상징탑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멸망한 백제를 위하여 구국항쟁의 최후를 마지 했던곳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 진다.
준비한 도시락을 집사람과 함께 먹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평소 먹던 양보다 적게 먹는다. 과일과 물과 과자류등은 수시로 조금씩 먹게 된다. 식사를 마친후 고대 조치원 분교에서 근무하는 죽마고우 명규에게 전화를 하였다.만날수는 없고 여름 방학때 얼굴이나 보자고 아쉬운 전화를 끊었다. 하산길에 이 모양 저 모양의 사진을 찍으며 내려 가는데 , 이게 웬일이니? 달 없는 밤 하늘의 반짝이는 수 많은 별보다 더 많은, 아주아주 많은 새카만 버찌가 임자 없이 길가에 서 있으니... 우리는 나이도 잊고 철도 없는 벌거숭이 아이처럼 까맣고 똥글똥글하고 시큼달큼한 산버찌를 입술과 혓바닥이 까맣게 되도록 따 먹었는데 , 어라 손 바닥까지 물이 들어 한참이나 씻어내고 부지런히 내려 가는데 하산이 다 되어 가는지 키가 훌쭉한 하얀 망초꽃이 다소곳이 배웅하러 나온다. 하산 완료하여 무공해 뽕잎을 따면서 오전에 뵙던 할머니 댁에 들려 호박과 고춧잎을 구잎 하였더니 빨간 앵두 한 그릇을 기차 타고 가다가 먹으라고 덤으로 주신다. 할머니 댁에서 기르시는 소와 개와 닭의소리, 그리고 운주산 할머니의 풋풋한 인심을 뒤로하고 손을 흔들며 귀가의 발길을 재촉하였다.
12.23
호박과 고춧잎...정말 정겹게 느껴지네요..우리 시골에선 호박잎으로 쌈해 먹던데..그것도 참 맛있거든요~
운주산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