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역에서 내리고 난뒤
인심좋은 택시기사에게 월미도유원지에 가자고 제안하자
그러면 기사는 우선 서해바다의 낭만과 왜 여자친구와 오지 않았느냐구 곤란한 질문을 한다
그러면 쓰윽히 웃고 난 뒤 나이, 학력을 물으면서 헤어진다
2000원 남칫 요금을 받고 홀연히 택시기사는 사라진다
이제 서해바다다
이곳이 서해바다다
어찌 할수 없는 흥분감에 나는 들떴고
망원경으로 본 섬들의 자악한 모습은 나의 감정을 흔들려 놓았고
우리는 머지 않아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내내 놀 생각을 하니, 어느새
고등학교 진로에 관한 이야기는 파묻혀있었다
걱정 훌훌털고 영종도를 가는 용주호를 탔다
그 배에 타고 나니 지금 생각해도 내 자신의 광심을 처음 보는듯 하였다
바다위를 가로지르며 갈매기들은
무사히 우리를 섬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수고했다며 새우깡을 던져주었고
그것을 놓칠세라 냉큼 받아먹는 갈매기..
우선 이름만 얼핏 들어온 이 섬에서 무얼 해야 할까
어떻게 놀아야 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다가
자전거를 빌려 이 섬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영종도선착장에 유일하게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3000원짜리 자전거를 빌려서 친구들과 실컷 패달을 밟았다
우리는 외진 길을 향했다
사람이 아주 드문, 강아지 한마리 조차 없는 그런 길로 향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있으면서도 고요한 그 길..
머지 않아 갈림길에서 한곳은 마을쪽으로, 한곳은 길 험악한 아주 작은 해변(?)
갯벌 수준이었다
우선 자전거를 갈림길에 세워놓고 오른쪽을 들어갔다 (갯벌 겸 해변)
가자마자 공포로 휩쓴 나무가 있다
저고리들을 사람모양 그대로 매달아 놓은 나무며,
개들의 유골..
아마 무당이 굿을 했던 나무와, 관강객들이 먹은 개고기 같다.
더욱 섬뜻한것은 무당나무 아래 촛불이 아직도 켜져 있다는 것이다
바람도 엄청나게 불던 토요일인데,
작은 종이컵에 둘려져 있는 그 촛불이 여태껏 켜져 있는것이다.
이곳 형편을 봐서는 사람들이 한시간에 4~5명 지나가는 것같은데..
적어도 하루는 지난 촛불이었다
그 공포스런 나무를 지나 좀더 걷고 나니
사람의 발길이 끊긴 길이 있다
어쩔수 없는 공포에 나 역시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그리하여 아까 그 갈림길에서 이제는 언덕을 향해 난 마을길로 들어간다
그곳은 개들의 고향인듯, 개들이 집보다 더 많은것 같았다
낯선 이방인 - 다른도시의 사람을 본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신기하듯 보다가,
괴물이 아님을 알고 하던 일을 한다
이곳이 완전 시골이라, 갈림길이 무척이나 많았다
우리는 무조건 느낌으로 가보았다
그것이 참된 여행이 아닐까
그리하여 고추를 따고 있는 금실 좋은 노부부들의 순박한 말씀 속에 들어있는
삶의 근본을 발췌 한 다음 아무런 걱정없이 다시 그 무당나무에 대해 언급할수 있었다
아아 바다는 이렇게 육지를 넘나드려 하는데 그 속을 모르는 인간은 이렇게 높은 둑을 쌓는구나
이제는 옛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올법한 그런 마을을 가로질러 갔다
농촌이라서 그럴까 우릴 반겨주는 사람은 없고, 닭과 개들이 짖어댈뿐이다
그렇게 1시간 하고도 30분을 더 돈것 같았다
우리는 영종도의 반이상은 자전거로 돌았을거라는 느낌에 뿌듯하였다
그러나 영종도 안내지도를 보고 난뒤 그 생각이 산산히 깨져버렸다
반도 안된다.
그 섬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 정도를 돈것 같았다
개발이 안된, 시골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곳들 - 진흙 투성이, 혼잡한 갈림길
그런곳들만 골라서 횡당했던것이다
참 저주스럽다
그 무당나무가 우리를 붙잡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개들의 유골이 우리를 못가게 하였을까
허탈하게도 그것으로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이 허무감을 이끌고 영종도에서 영종도 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 사이에 머리 중천에 있던 태양은
새빠알간 노을이 되어서 내 앞에 떡하니 모습을 낸다
얄밉게도 벌써 지는구나
그런 노을도 쑥스러운지 자꾸 구름속으로 숨으려 한다
(영종도 버스 이야기는 다소 불편한 내용이 많으므로 생략하겠다)
그리하여 다시 종점에서 종점으로 와서,
떠나기전 끊어놨던 승선티켓을 확인 한뒤 배에 올랐다
오늘 내내 한숨스러운것은 시간낭비가 심했다는 것과
추억 한장을 찍지 못한것이다
그렇게 노을이 사라지고 달빛이 얼굴을 비추는 밤이 다되었다
정말 암흑같은 바다는 모든것을 삼킬듯 무서웠다
배 위에서 우리는 어느새 진로 이야기를 숨길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래전에 감춰두었던 항해사가 되고팠던 나의 방황시절을 친구들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놀라운것은 고민이 없어보이던 그 얄밉던 놈들도, 많이 고민하고 방황한다는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렇게 깊이 빠져들던 야담夜談도 육지에 도착하고 나니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대충 저녁을 먹고, 늦은 나머지 택시를 붙잡아 인천역으로 급히 가고 나니
너무 일찍 숨어버린 태양과, 자꾸 가자고 보채는 친구와, 지나치게 빠른것 같은 배와, 오늘따라 유난히 차가운 바람이 얄밉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오늘 하루 - 영종도.. 그 재미 없는 섬을 방문한 날은
내게 나름대로의 깊은 회고를 느끼게 해주었다
인천역에서 방화역까지..
종점에서 종점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는 내내
나는 친구들의 얼굴이 못내 그리워질것 같아서
계속 계속 쳐다보았고 이런 내마음을 몰라주는 놈들은
" 그만좀 갈궈"
짜식들.. 너네가 나처럼 성숙해봐 임마!
나는 올한해동안 두번 바다를 방문했다
여름때는 동해바다였고 겨울인 지금은 서해바다이다(그때마다 내 옆에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랜다
나는 이제 그것을 증명하러 언젠가는 남해를 향해 떠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