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연 9기 우선미
거창에서의 호흡을 잠시 멈춘 채, 두 번째 기행을 떠났다.
실바람이 들어오는 차창 밖에는 어느 덧, 진달래 꽃이 아주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녹빛깔 아래 은은하게 퍼져오는 분홍 내음은 꼭 선녀를 연상케 했다. 솔솔 부는 바람에 새싹들이 조심스레 흔들리는 것도, 드넓은 하늘에 비둘기 빛 구름들도 새삼, 진짜 봄이구나 느끼게 했다.
복잡한 시내로 접어드는가 했더니 우리 일행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동대구역으로 갔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과 함께 경주행 기차를 탔다.
덜커덩 덜커덩 소리에 레일이 멀어졌다. 석양아래 간간히 비춰지는 벚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뽀이얀 꽃봉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마치 천사들의 날개짓 같았다. 간이역 옆쪽으론 토끼가 보이고 여러 들꽃이 피어있어 시내에서는 닫혀 있던 마음의 카메라가 저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정신없이 푹 빠져 있는 사이, 기차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언제쯤 저것들을 다시 보고 느낄 수 있을런지.... 아쉬움이 가득한 채로 내키지 않는 발길을 떼고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온 시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레일 위로 보이던 경관들 만큼은 채울 수가 없었다. 이것 저것 모닥불 축제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버스에 올랐다. 얼마를 갔을까... 풋풋한 바다 향내가 내 단잡을 깨운 것이다. 모래 사장 위를 어서어서 뛰어 보름달 아래 비춰지는 바다를 안았다. 나를 어지간히 반기는 듯, 파도 소리가 유난히 크다. 동글동글 예쁜 돌구슬도 다 쓸고 와 주었다. 한 동안 쌓여 있던 피로가 시원한 바다 소리에 훌훌 날아갔다. 한창 감상에 젖어 있노라니 희ㅣ한 불빛이 통통배 소리를 이끌고 왔다. 깊고 고요한 밤에 들리던 통통배 소리... 글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기분이랄까? 덕분에 엔돌핀이 최고조였다. 신이 아님으로 바다를 다 갖지 못함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잠시 후 넓다란 모래 사장 한 곳에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눈앞에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눈부셨다. 기타도 없이 지낸 축제였지만 별은 그 추운 새벽을 지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음율이 흐른다 했다. 소리없는 연주는 새벽을 채워갔다. 잠시 후, 붉은 생명이 하늘로 타올랐다. 일출이 시작된 것이다. 잿빛 구름을 비집고 나오는 지평선의 몸부림에 그만, 혼을 뺏기고 말았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가야만 하는 아쉬움조차 망각한 채.... 선뜻 내키지도 않는 일은 너무도 빠르게만 다가왔다. 언제였는지 시커먼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내 바램을 써 본일이 있었다. 바다를 찾아 여행 하다 마지막이라 느껴지는 바다에서 눈을 감겠노라고.... 내 마지막 바다가 너희들이 될 것이라고 약속 해 보았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탁 트인 시내로 접어 들었다. 어디선가 은은한 바람이 일었다. 아! 천사님의 날개짓이었다. 살랑 바람을 타고 다가와 나를 알아봐 주었다. 예쁘다는 말로도 감히 표현 될 수 없는 평온함에 나 또한 저 흰 빛 날개를 달고 날 것만 같았다.
두 번째 기차여행... 조금 고된 일정으로 끝냈지만, 남다른 감회로 그려 놓은 내 풍경화를 두고두고 추억하련다.